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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분옥 시조시인의 시조 美學과 절제](20)헌화가-신라 향가

2024-05-31     경상일보

저 절벽 자주빛 바위 끝에 핀 꽃을
잡은 손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 하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아름다운 여인 향한 위험 무릅쓴 연정

▲ 한분옥 시조시인

지난 주말에 문학기행을 나섰다. 동해 바다 어느 해안가에서 잠시 쉴 때 높다란 언덕위에 핀 꽃을 올려다보니 오월의 하늘을 이고 꽃은 자지러질듯 피어있었다. 문득, 이 길이 신라 동경에서 강릉으로 가는 길목이니 저 언덕 절벽에 핀 꽃이 헌화가에 등장했던 그 꽃이 아닌가 싶었다. 그 요염한 꽃의 빛깔과 아름다움에 탄성을 질러도 주위에는 어느 누구도 꽃 한 송이 꺾어 줄 이는 없었다.

신라 성덕왕 시대 순정공이 강릉 태수로 부임하는 길에, 바닷가에 머물러 쉬고 있었다. 길가에는 천길 바위가 우뚝 솟아 있는데, 그 바위 끝에 철쭉꽃이 붉게 피어 있었다. 순정공의 부인 수로가 좌우에 있는 이들에게 “저 꽃을 꺾어다 바칠 사람이 그 누구인고?” 말 하나 종자(從者)들은 “사람이 다다를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하며 모두들 물러섰는데, 그 곁으로 암소를 끌고 지나가던 노인이 수로 부인의 말을 듣고 잠시 망설임 끝에 절벽을 기어올라 꽃을 꺾어 바치었다. 또한 노래(헌화가)마저도 읊어 바치었다. 그리고서 노인은 바람 같이 사라져서 어떤 사람인지 알 수도 없었다.

수로부인의 아름다움에 반해 지나가던 노인이 위험을 무릅쓰고 꽃을 꺾어 바친게 아닌가. 꽃이 아무리 아름답기로서 어찌 성숙한 여인의 아름다움에 견주랴. 예나 이제나 여성의 아름다움의 칭송을 해어화(解語花) ‘말을 알아듣는 꽃’이라고도 하지 않는가. 예쁘다 하는데 무슨 죄 될게 있으며, 아름다움을 봐라 칭송하는데 그게 무슨 죄가 되랴. 아름다운 수로부인이 간절히 원하는 꽃이라면 천길 낭떠라진들 왜 못 올라 갈거냐고, 꽃을 꺾어 바친다는데 누가 말릴 수 있으랴. 위 ‘헌화가’는 신라 향가 중 4구체 향가이다.

시조라는 명칭이 언제부터 사용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노래를 뜻하는 말인 가요·가곡 등이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지어지고 노래되어 왔던 것이다. 신라 향가 또한 우리 민족이 노래하고 읊어온 가곡의 한 장르였으니, 강릉 가는 길목, 절벽의 꽃을 보다가 오늘은 ‘헌화가’를 되뇌어 읊어본다.

한분옥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