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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분옥 시조시인의 시조 美學과 절제](21)상치쌈-조운(1900~?)

2024-06-07     차형석 기자

쥘상치 두 손 받쳐
한입에 우겨넣다

희뜩
눈이 팔려 우긴 채 내다보니

흩는 꽃 쫓이던 나비
울 너머로 가더라


상추쌈 한입하며 눈으로 나비와 노닐다

▲ 한분옥 시조시인

유월은 다시 또 어머니 손길로 온다. 초여름 이맘때는 푸짐한 푸성귀 철이다. 텃밭에서 방금 솎아온 상추 잎에 찬밥 한 숟갈, 참기름 친 마늘쌈장을 얹어 쥘상추 한줌 볼이 터지게 상추쌈을 싸먹는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툭 분지른 풋고추를 된장에 찍어 곁들여 먹는 맛 또한 일품이다.

상추쌈은 볼이 미어터지게 두 손으로 받쳐 든 쥘상추쌈이라야 제맛이다. 입을 크게 벌리니 눈도 크게 벌어지겠죠. 그때 비로소 때린 서방보다 더 미운 말리던 시누이를 이참에 눈이나 흘겨주면 반분이라도 풀리지요. 두 번째 쌈을 싸면 이번엔 마주 앉은 상머리에 용심궂은 시어머니를 눈 흘기며 한 쌈 크게 싸먹는 맛도 맛일까요.

그러나 조운 선생은 위 시조에서 미어터지게 쌈을 넣은 순간, 그것도 큰 이파리 한 장으로 싸먹는 상추쌈이 아닌, 아직 덜 자라 한줌을 쥐어야 손바닥 가득 깔리는 쥘상추쌈이라니 말이지요.

흘기듯 튀어나올 듯한 흰 눈동자로 희뜩 지나가는 나비를 쫓는다고 하였으니, 이 절묘한 표현으로 ‘상치쌈’의 생명 또한 시인의 이름과 함께 천년의 시조역사와 함께 하리라 믿어진다.

“시에는 백석, 시조에는 조운”이라는 말에 걸맞게 조운 시조는 빼어난다. 일제 강점기, 다들 우리 것을 버리고 구미의 것을 추종하던 시절, 시조를 창작한 조운 시인이다.

투박한 나의 얼굴/ 두툴한 나의 입술// 알알이 붉은 뜻을/ 내가 어이 이르리까// 보소라 임아 보소라/ 빠개 젖힌/이 가슴.

(‘석류’ 전문)에 이어 사설시조 ‘구룡폭포’ 또한 배어난다.

전남 영광 출생으로 1919년 만세 시위 참가. 1947년 <조운 시조집>을 간행한 바 있다. 1948년에 자진 월북하여 북한에서 인민회의 상임위원을 지냈으며,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1988년 해금작가로 풀려났다. 참고로 필자는 2020년 제5회 조운문학상을 수상한바 있다. 한분옥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