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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김영산 ‘하지(夏至)’

2024-06-17     차형석 기자

밤꽃 냄새가 확 풍긴다
솜털 보송보송한, 긴 꽃줄기
샛노란 벌레같이 땅을 긴다
뼛속은 오그라들어 타들어갔지만
다시 보니 점점이 눈부신 등 같다
도토리나무 잎사귀에 내린 그것을 나는 줍는다
긴 하루는 어디서 오는 것이냐,
이제 모두 가버린다 믿었지만
사리울산 에돌아 어린 딸 손잡고 왔다
소래 가는 샛길 얽히고설킨 그늘 밑에
새끼 사슴이 자꾸 숨는다
사슴목장, 사슴뿔이 어느새 나뭇가지 모양 자랐다
땅가시덩굴이 철조망 덮고
산딸기 붉은 등에 먼지가 끼다


하짓날 주위 둘러보니 밝지 않은 게 없어

▲ 송은숙 시인

일 년 중 낮이 가장 길다는 하지. 말 그대로 여름(夏)에 이르렀으니(至) 이제 본격적인 무더위와 장마가 시작될 터이다. ‘하지 지나면 오전에 심은 벼와 오후에 심은 벼가 다르다’ 했다. 덩굴손이 자라는 게 보일 정도로 식물은 이때쯤 가장 왕성하게 자란다.

시인은 이 하짓날, 어린 딸을 데리고 동네 야산 둘레길을 걷고 있다. 하지 무렵엔 아까시꽃이 지고 밤꽃이 핀다. 시인은 길쭉하고 노르스름한 밤꽃을 처음엔 벌레 같다고 했다가 나중엔 눈부신 등 같다고 하였다. 그 사이에 ‘다시 보니’가 있다.

시인은 사슴목장도 보았다. 맹렬히 자란 가시덩굴이 사슴목장의 철조망을 덮어 세상은 푸르게 잠겨 보이고, 그 근처엔 붉게 익은 산딸기. 산딸기 붉은 등은 등(背)일까 등(燈)일까. 밤꽃의 눈부신 등, 산딸기의 붉은 등. 하짓날 보이는 것은 밝음 아닌 게 없다. 그래서 “긴 하루는 어디서 오는 것이냐” 물을 때, 저 산의 풍경을 그대로 보여줘도 좋겠다.

이제 한해의 반을 지나 만상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려 하고, 시인은 그 극점에 어린 딸을 세워 본다. 잘 자라거라. 송은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