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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강]8년간 종중 묘지분쟁, 결국 국민권익위로

공공사업 진행과정 묘지 처리 문제 행정심판·소송 등 법적인 해결보다 권익위 고충해소 제도 적극 활용을

2024-06-17     경상일보
▲ 김태규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사회 전반적으로 유교적 정서가 많이 퇴색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그 영향력은 의연하고, 망인의 분묘를 대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도 각별하다. 그러다 보니 국가 사업하다가 분묘가 나타나면 그 처리를 두고 사업이 지연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국수자원공사는 구미시 해평면과 산동면 일대에 282만평 규모의 하이테크밸리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그 사업구역 안에는 A종중이 자기 종중원들의 묘지라고 주장하는 235기의 분묘가 산재해 있다. 한국수자원공사는 이 분묘들이 정당하게 개장(改葬)되기 전까지는 사업을 이어갈 수 없게 되어 큰 장애가 발생했다.

A종중은 사업구역 내에 산재한 분묘들이 모두 종중원들의 것이라는 주장에 터 잡아 유연(有緣) 분묘로 보상할 것을 요구했다. 한편 한국수자원공사는 종중의 주장만을 들어 선뜻 보상했다가 나중에 실제 연고자가 나타나 종중에 대한 보상을 문제 삼으면 이보다 더 난감한 일이 없게 된다. 쌍방의 입장이 이렇게 부딪치면서 결국 법적 분쟁이 발생했다.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을 거치면서 대법원에서 최종적인 판단이 있기까지 약 8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대법원은 ‘위 235기의 분묘를 종중이 관리하는 분묘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오랜 송사를 거쳤지만, 종중으로서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었고 분묘는 무연고 분묘로 개장될 위기에 처했다. 그런데 소송에서 이긴 한국수자원공사도 정작 개장 절차로 쉽게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A종중의 주장대로 종중원의 분묘일 개연성이 상당한데, 무연고 분묘로 처리하기가 정서적으로 여의치 않았고, 승소 판결만을 이유로 지역주민의 원망을 떠안으며 사업을 강행하려니 관련 지방자치단체도 소극적이었다. 구미시장은 쌍방이 합의해 오면 개장 신고에 대한 증명서의 발급 등 행정적 협조가 가능하다는 태도를 견지했다.

결국 8년간의 오랜 법적 분쟁에도 누구도 만족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 사건은 국민권익위원회의 조정을 통해 궁극적인 해결책을 찾았다. 권익위가 제시한 조정안의 내용은 이러하다. 한국수자원공사는 분묘와 관련해 무연고 분묘의 보상액 단가로 이장 비용을 지급하기로 했다. 한편 종중은 종중 소유 토지에 산재한 모든 분묘를 종중이 선정한 장소로 이장하고, 또 종중원이 아닌 연고자가 나타나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이장 비용 등을 모두 책임지기로 했다. 그리고 구미시는 양 당사자가 조정에 이르면 분묘개장에 대한 행정절차를 조속히 해결해 주기로 했다. 이러한 권익위의 조정안에 대해 종중, 한국수자원공사, 구미시장이 모두 동의했고, 이렇게 함으로써 종중 묘소에 대한 분쟁은 일단락되었다.

종중으로서는 대법원까지 갔지만 결국 패소해 보상 없이 종중원의 분묘를 개장 당하는 위기를 모면했고, 한국수자원공사로서도 분묘를 강제로 개장하면서 생겨날 지역주민의 원성을 피할 수 있었다. 구미시장도 지역의 중요한 현안인 산업단지 조성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공익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종중 묘지를 이장해야 하는 등의 고충은 국민권익위원회에 다수 제기되고 있다. 올해 3월에도 제주도에서 근린공원을 만들면서 종중 묘역이 사업구역에 들어가 진출입로가 없어졌다면서 대체도로를 만들어 달라는 고충이 생겨 이를 조정으로 해결한 선례가 있다.

산업수도이고 또 도심의 배후지가 넓은 울산에서도 공공사업 진행 과정에서 이 사례와 같은 일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그럴 때 일도양단의 해법만 찾는 법원의 해결보다는 유연한 해법을 도모하는 국민권익위원회의 고충해소 제도를 활용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행정작용에서 발생한 갈등에 행정부처가 마련하고 있는 적절한 방법을 잘 활용하는 것은 갈등 해소를 위한 바른 방법의 선택이다.

김태규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