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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금 칼럼]공복(公僕)은 심부름꾼이 아니다

공무원은 행정을 수행하는 전문가로 단순한 심부름꾼이나 노예가 아냐 과도한 민원서비스 재점검 서둘러야

2024-07-02     경상일보
▲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 행정학

우리나라 공무원들의 서비스는 가히 세계적인 수준이다. 잠시라도 해외에서 거주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우리나라 행정 서비스가 최고라는 사실을 금방 알게 된다. 외국의 행정기관이 제공하는, 느린 것은 물론이고 친절하지도 않은 서비스를 경험하게 되면 한국이 더욱 그리워질 정도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행정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 왜 그럴까.

물론 한국의 행정서비스가 처음부터 높은 수준이었던 것은 아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관존민비(官尊民卑)적 사고가 잔존했고, 고압적 태도를 보이는 갑질 공무원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상황이 변한 것은 80년대 말 비민주적 정권이 퇴진하고, 90년대 들어 지방자치가 본격화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주민직선에 의해 자치단체장이 선출되면서 주민들의 표를 얻기 위한 경쟁이 가열됐고, 주민들의 요구에 대한 대응성(responsiveness)이 강화됐다. 또한 우리나라 행정에 신자유주의적인 이데올로기가 도입되면서, 행정에도 고객(client) 개념이 등장했다. 마치 기업들이 고객인 소비자들의 만족을 중시하듯이 행정도 주민들을 고객으로 보는 관점이 자리 잡게 됐다.

이러한 변화는 행정의 민주화와 함께 공공서비스의 양적 확대와 질적 개선으로 이어졌다. 주민들의 행정 참여가 획기적으로 증가했고, 주민들의 요구는 즉시 행정에 반영됐다. 이러한 경험이 축적되면서 주민들과 자치단체장들에게 일종의 학습효과를 가져왔다. 주민들은 문제가 생기면 주저 없이 행정기관에 해결을 요구한다. 단체장은 주민들이 요구하기도 전에 더 제공할 서비스가 없을까 하고 찾아 나선다. 주민들의 주장을 행정에 반영할 수 있는 통로가 열리고, 행정기관이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발굴해 주민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바람직한 자치행정의 모습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했다. 권위적 행정은 사라졌지만, 그 대신에 ‘고객은 왕이다’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행정에 대한 요구와 대응이 당연시됐다. ‘공무원은 공복이다. 우리의 심부름꾼이다. 따라서 우리가 원하면 무엇이든지 들어주어야 한다’는 식의 사고가 팽배해졌다. 선거를 치러야 하는 단체장은 주민들의 요구를 적절히 조절하지 못하고 오히려 확대·조장해 왔다. ‘생활민원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수도꼭지 교체, 못 박기까지 제공하는 지역도 있을 정도다. 심지어 아파트에 이삿짐 트럭의 진입이 어려울 때도 구청에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행정서비스의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되었다. 조금만 만족스럽지 못해도 격렬한 불만을 표출한다. 결국 급증하는 주민들의 요구와 이를 조장하는 단체장 사이에서 공무원들만 죽을 맛이다.

최근 악성민원을 해소하기 위해 중앙정부를 비롯한 여러 기관에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여기에서 간과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행정서비스의 범위에 관한 것이다. 사인(私人)간의 협의나 계약을 통해 해결돼야 할 문제들이 행정기관의 공적인 업무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너무 많다. 주민들의 요구를 거의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야기된 행정 서비스의 지나친 확대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 과연 행정이 제공해야 하는, 또는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는 어느 정도까지인가에 대해서 체계적인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치단체장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상명하복이 뚜렷한 공직사회에서 공무원들 스스로 자신들이 수행하는 행정의 업무범위를 제한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이 문제는 단체장이 톱다운 방식으로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 주민들의 요구라면 무엇이든 들어 주어야 한다는 사고는 자제돼야 한다. 공무원들을 불필요한 민원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사항은, 그동안 관행적으로 또는 단체장의 묵인이나 지시로 행해지던 ‘과도한’ 민원서비스들에 대한 재점검이다.

공복, 즉 공무원은 행정을 수행하는 전문가이다. 단순한 심부름꾼이나 노예가 아니다. 이들은 못 박기나 하고 이사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아니다. 공무원들을 공익을 위해 봉사하는 전문직업인으로 인식하는 문화가 절실하다.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 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