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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생각]대명사가 되어 버린 ‘흑백사진’

2024-07-04     경상일보
▲ 김지영 울산젊은사진가회 대표

디지털카메라나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하는 사진이 너무 익숙해진 지금 ‘필름’ ‘아날로그’ 와 같은 말은 새삼스럽게 들린다. 2000년대 초반 사진학과 진학을 위해 실기시험 준비를 할 때만 해도 필름 사진 포트폴리오는 필수였다. 처음 암실에서 느꼈던 설렘은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 속에 또렷하게 남아있다. 물론 요즘은 디지털 사진이 훨씬 보편화되어 있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필름 카메라를 사용할 일이 거의 없다.

최근 스튜디오를 찾은 손님이 어려운 부탁인 듯 조심스럽게 질문을 했다. “혹시 흑백사진으로도 만들 수 있나요?” 사실 디지털 사진 공정 과정 안에서의 채도 변환은 편집프로그램에서 버튼 한 번만 누르면 되는 너무나도 간단한 일이다. 그 덕에 수많은 ‘흑백사진관’들이 생겨났고 소비자들은 손쉽게 아날로그 감성이 담긴 신비로운 흑백사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다만 디지털 흑백 사진과 아날로그 흑백사진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아날로그 방식의 흑백 사진은 흑백 필름을 넣고 보이지 않는 노출값을 조절해 가며 촬영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 후 촬영된 필름의 잠상을 깨워내는 ‘현상(現像)’ 과정이 필요하다. 암백이라고 하는 빛이 들어가지 않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필름을 감아 현상 탱크에 넣는다. 그리고 약품을 이용해 현상, 정지, 정착, 수세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비로소 음화 필름이 탄생한다. 그 후 종이 사진으로 뽑기 위해서는 붉은 등이 켜진 암실에서의 ‘인화(印畵)’ 작업이 필요하다. 확대기에 필름을 걸고 사진 인화지에 노광을 준 후 다시 한번 현상, 정지, 정착, 수세의 과정을 거쳐야만 한 장의 사진이 완성 된다. 짧은 문장으로 표현했지만 사실 품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다.

프로그램 버튼 하나로 만드는 디지털 흑백사진과 시간과 정성을 들인 사람의 손으로 만드는 아날로그 흑백사진이 갖는 의미는 분명히 다르지 않을까? 아날로그 방식이 무조건 우월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디지털 방식의 결과물이 더 좋을 때도 많다. 다만 대명사가 되어버린 ‘흑백사진’이라는 말이 디지털 촬영 후 채도 조절 버튼을 누르고 나면 나오는, 마치 필름 사진인 것처럼 흉내 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점을 꼭 말하고 싶다.

몇 달간 우리 스튜디오 암실에서는 아날로그 사진 전시 준비가 한창이었다. 울산문화예술회관에서 어제부터 시작된 뉴비전아트포럼의 ‘아날로그의 풍경들’이라는 전시이다. 더운 여름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의 특수 사진 제작에서부터 어렵게 구한 종이와 약품으로 여러 번의 테스트를 거쳐야하는 긴 작업 과정을 기꺼이 즐기는 작가들을 보니 ‘진짜 아날로그 사진’에 대한 매력이 다시금 느껴졌다. 사진가들은 여전히 ‘시간이 담긴 물질성’을 갖는 구식의 방식을 사랑한다. 바쁘게 지내야만 하는 일상이지만 잠시나마 느린 시간이 담긴 사진 작품을 통해 쉬어가도 좋을 것 같다.

김지영 울산젊은사진가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