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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속의 꽃(12) 능소화]장마꽃

2024-07-16     경상일보
▲ 안순태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교수· '알고 보면 반할 꽃시' 저자

장마에도 꽃은 핀다. 능소화는 이즈음 짧은 나팔 모양으로 피는 연한 주홍빛 꽃이다. 능소화가 피면 장마가 진다고 해서 이 꽃을 ‘장마꽃’이라고도 했다. 질 때는 송이째 툭 진다. 울산에서는 중구 동헌의 능소화가 유명하다. 덩굴로 담이나 소나무를 타고 올라가 꽃을 피우는데, 때로는 그 높이가 몇 길이나 된다. 그래서 ‘하늘을 침범한다’(凌霄)는 이름을 가졌다.

예전엔 문 앞에 말과 수레 가득했는데
한바탕 꿈인 듯 신기루와 같구나.
무지개는 아득히 달까지 이어졌는지
비 오는 저물녘에 능소화 피어 있네.

馬闐車咽舊時門(마전거인구시문)
海蜃樓空夢一番(해신누공몽일번)
何處蒼茫虹貫月(하처창망홍관월)
凌霄花發雨黃昏(능소화발우황혼)

능소화

조면호(1803~1887)의 ‘어교에서 느낀 일(魚橋感事)’이란 시다. 어교는 경북궁 서쪽 적선동에 있던 다리다. 다리 근처엔 시인의 스승 추사 김정희의 집이 있었다. 한때 말과 수레로 문전성시를 이루던 그곳은 어느새 쓸쓸하게 장마를 지나고 있다. 예전엔 다리를 무지개에 빗대었다. 무지개가 아득히 달까지 이어졌다는 것은 다리(어교) 위 능소화가 어스름 장맛비에 높이 이어져 그 끝이 안 보이는 어슴푸레함을 묘사한 것이다.

임진왜란 때 울산 기박산성에서 의병을 일으키기도 했던 장희춘이 17세기 초 일본에 사신으로 갔다가 도쿄 인근에서 능소화를 처음 보았다고 한다. 그만큼 조선시대엔 희귀한 꽃이었다. 18세기 후반 중국에 사신으로 갔던 정홍순이 북경에서 이 꽃을 가져와 심어 우리나라에 퍼지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의 관모를 장식하는 꽃으로 쓰여 양반꽃이라고도 했다. 예전엔 능소화에 독이 있다고 여겼다. 능소화를 쳐다보다 꽃잎에서 떨어진 이슬에 실명했다거나, 부인이 능소화 향기를 맡으면 잉태하지 못한다는 말도 있었는데 다 낭설이다.

안순태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교수· <알고 보면 반할 꽃시>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