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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까다로운 소망

2024-07-24     경상일보
▲ 안현정 청솔초 교사

학년 초, 작년과는 사뭇 다른 아이들의 반응에 나도 적응 기간이 필요했다. 내성적이고 말수가 원래 없는 아이들에게 대답을 강요할 일은 아니지만, 간단한 질문에도 반 아이들의 전체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은 교사로서 깊이 생각해 볼 문제였다.

음악 시간에 수석 선생님이 아이들이 대답을 너무 안 해 담임선생님께 혼났냐고 물었다고 하였다. 또, 과학실에서 수업하는 것을 우연히 들은 옆 반 선생님은 “원래 선생님 반 아이들은 그렇게 말이 없어요?” “선생님이 수업을 그렇게 열심히 하면서 묻는 데, 아이들이 아무 말이 없네요.”하며 신기해 했다. 특히, 듣고 말하는 국어 시간에는 수업 진행이 힘들다. 이 힘듦을 그냥 넘기면 교사가 편하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아이들과 주거니 받거니 말을 하며 역동적인 수업이 이루어졌으면 했다. 이런 바람이 있는 나는 수업 때마다 매번 상심이 커졌다. 3월에는 낯설고 새로운 환경이 익숙지 않아 아이들이 말문을 열기 힘들 수 있다는 생각에 충분히 이해가 갔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수업 시간의 침묵은 여전했다. 쉬는 시간과 체육 시간은 누가 뭐래도 초등학교 3학년의 모습인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학창 시절에 말이 없는 아이였다. 우렁찬 친구들의 대답 소리에 묻어가는 내성적인 아이였다. 그래서, 우리 반 아이들이 이해가 가면서도 까다로운 소망 하나를 가지게 되었다. 언제쯤이면 조잘조잘 우리 반 아이들과 재미있게 이야기하다 시간 가는 줄 모를 날이 올까 하고. 그러던 중 나는 울산시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북맘들의 낭독 챌린지’ 책 읽기 수업을 신청했다. 대상 도서 중 <절대로 실수하지 않는 아이> 그림책을 보는 순간 우리 반 아이들이 떠올랐다. 절대로 실수하지 않는 아이가 책의 끝부분 무대 위에서 공연 중에 실수를 하게 된다. 관객들은 모두 숨죽여 바라본다. 이때, 주인공이 한 행동에 우리 반 아이들은 당당상과 웃음상, 대견상을 주자고 하였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발표해 보자는 북맘 선생님의 말에 아이들은 또 움찔했다. 수업이 끝날 무렵 북맘 선생님은 빵점 맞는 놀이 활동을 했다. 절대로 정답을 말하면 안 되는 놀이다. 첫 번째 문제는 ‘한글을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요?’였다. “저요! 저요!” 갑자기 교실은 아이들의 목소리로 떠들썩했다. 하염없이 이 광경을 바라보던 나는 북맘 선생님들이 가고 난 후 아이들에게 물었다. “책을 읽고 생각과 느낌 이야기할 때는 한 명 두 명 손을 들까 말까 했는데, 빵점 놀이는 어떻게 모두 다 손을 들 수 있었어?” “재미있으니까요!” 아이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재미있는 활동만 하면 공부를 못하고 수업 시간이 끝나버리게 되잖아?” 했더니, 기철이가 우물쭈물하며 “그…그 대신에 빵점 맞아도 된다는 자신감을 얻잖아요!”라고 외쳤다. 이번엔 내가 할 말이 없어졌다. <절대로 실수하지 않는 아이> 책에 나오는 베아트리체와 관객처럼 나와 우리 반 아이들은 왜 웃는지 모르면서 한바탕 웃으며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안현정 청솔초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