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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곤의 살며 생각하며(54)]생활에 힘이 되는 새로운 시도

나이가 들수록 삶의 반경은 좁아지지만 은퇴 후 배움을 실천하는 사람도 많아 무위의 즐거움을 깨치는 것도 한 방편

2024-07-31     경상일보
▲ 김상곤 칼럼니스트·철학박사

노령 인구의 비율이 높아지면서 생긴 조어가 있다. ‘100세 시대’라는 말이다. ‘제2의 인생’이라는 말도 이와 비슷한 뜻을 담고 있다. 노인이 되어서도 늙은 티 내지 말고 젊게 살아야 한다는 긍정적인 표현이다. 시대적 조류를 담고 있는 지혜로운 생각이고 의학적으로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일어나는 구체적인 삶의 모습은 다른 의미의 해석을 불러오기도 한다. 현실보다는 앞으로 지향하고 싶은 모습이 더 많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노년의 생활 속에서 대면해야 하는 실질적인 어려움을 앞으로 드러내고 싶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삶에 필요한 의미를 육신의 존속만으로 충족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고령이 되어서도 자신의 노력으로 건강한 육신을 유지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삶의 반경이 점점 좁아지는 것은 피할 수가 없다. 관심의 영역이 줄어들고 욕구의 강도가 저하되는 것은 누구나 겪는 일이다. 흔히 이러한 변화를 감수성이 줄어든다고 쉽게 표현하지만 실제로는 많은 사실을 내포하고 있는 삶의 진행 과정이다. TV 드라마에서 일상의 즐거움을 발견하던 사람도 어느 시기가 되면 현실성이 떨어지는 극적인 이야기에 흥미를 잃는다. 맛집을 순례하는 즐거움이 행복의 실상이라고 주장하던 이들도 무엇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줄었다고 푸념한다. 제 몸을 돌보거나 일상의 편안을 추구하는 것과 관련이 없는 일에는 관심이 줄어든다.

그러나 은퇴 이후에도 호기심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배움을 실천하는 사람들도 있다. 살아오면서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악기 연주에 도전하기도 하고 몇 번 잡아보지도 않은 붓을 들고 그림 그리기에 열중한다. 아직 남아 있는 호기심을 소비할 새로운 대상을 찾아내는 아름다운 시도라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음악적 경험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색소폰이나 오카리나는 참으로 고마운 악기라는 생각이 든다. 배우기가 쉽지 않은 악기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은퇴자들은 색소폰을 사고 오카리나 동호회에 가입한다. 주위를 돌아보아도 이러한 시도가 실패로 끝난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다. 혼자 즐기는 수준을 넘어 공공장소에서 연주를 시도하는 사람들도 있다. 신기하다는 느낌이 들면서 부러워한다. 골프를 잘 치는 사람보다 악기를 잘 연주하는 사람이 훨씬 멋있어 보인다. 서구 선진국에서 중산층을 평가하는 기준에 악기 연주가 들어가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도 많은 감동을 준다. 언젠가 배우기를 시도한 적이 있어서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알고 있다. 기타를 치면서 하모니카를 부는 친구 모습이 존경스러워 보인 적도 있다. 은퇴 이후에 배운 기타 소리로 타인의 눈시울을 붉히게 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그 친구는 마음이 흔들리면 대화를 나눌 사람을 찾기보다 기타 줄을 튕길 것 같았다. 말보다는 노래가 낫다는 서정주의 시도 있지 않은가.

평소에 실천하고자 노력하는 원칙 같은 것이 있다. 하루에 한 번이라도 마음이 차는 만족감을 느끼면 하루를 무사히 건너갈 힘이 생긴다는 믿음이다. 그것이 책 속에서 발견한 몇 줄의 글귀일 수도 있고 오랜 친구와의 따뜻한 전화 통화가 될 수도 있다. 한 끼의 특별한 식사가 되면 더욱 좋을 것이다.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을 보면 리듬과 선율의 조화 속에서 그 힘을 얻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무위 속에서 살아갈 힘을 얻는 고수들도 있다. 맑은 날 공원 벤치에 앉아 햇볕을 쪼일 때 몸의 모든 세포가 깨어나고 숨구멍이 열리는 것을 느낀다고 한다. 작가 김훈은 이러한 시간을 허송세월이라고 표현했다. 자연과 몸이 하나가 됨을 느끼는 허송세월이다. 그도 40년대에 태어난 노인이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깊이 공감하는 것을 보면 삶의 좌표에서 비슷한 지점을 지나가고 있음을 느낀다. 무위의 즐거움을 배울 시기가 온 것 같다.

김상곤 칼럼니스트·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