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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홍의 말하기와 듣기(17)]의사 말하기

2024-08-02     경상일보
▲ 임규홍 경상국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우리나라의 진료시간은 OECD 평균 16분30초의 4분의 1도 안 되는 4분 초반 대라고 한다. 예약을 잡기도 어렵지만 어렵사리 예약을 하고서도 진료를 받기 위해 먼 지방에서 힘들게 올라가서 의사와 면담하는 시간은 기껏 3분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환자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겁 먹은 아이처럼 의사 앞에 앉았지만 의사의 말은 한없이 투명하고 성의가 없어 보인다. 이것이 안타까운 우리 의료 현실이다.

담화 갈래(장르)는 교실 담화, 법원 담화, 상담 담화, 상거래 담화, 협상 담화 등 상황에 따라 다양한 갈래가 있다. 의사 담화 즉 의사 말하기도 화법 종류의 하나이다. 병원 담화는 의사와 환자 사이에 일어나는 특수한 의사소통의 담화이다. 예전에 의사는 환자에게 단정적이며 투명하고 무겁게 말하고 진료지에 환자가 알 수 없는 암호 같은 영어를 흘려 적음으로써 그들의 권위를 세웠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다. 의사는 환자에게 진료 내용을 쉽고 친절하게 말해주어야 하고 환자는 그런 정보를 알 권리가 있다.

의사는 환자(너)에게 일방적으로 말하기보다 의사(나)가 환자에게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라는 ‘나 말하기’ 말틀로 말하는 것이 좋다. 때로는 의사 자신의 몸 관리를 소개하는 것도 좋고 환자가 몸 관리를 어떻게 하고 어떤 식습관을 가졌으면 좋을지 설명하고 권유하는 식의 말하기도 좋다.

“네 참 힘들었겠습니다.” “네 그렇군요.”와 같이 환자의 상태에 호응하면서 반응하는 말하기를 할 수도 있다. 이것을 공감하며 말하기라 한다. 의사와 환자가 서로 공감할 때 환자의 불안과 두려움을 줄일 수 있다. 또 의사의 말은 그 누구보다도 신중해야 한다. 의사의 섣부른 잘못된 말 한 마디로 환자와 그 가족 모두 슬픔과 두려움의 고통을 겪은 일이 한둘 아니다. 의사도 신이 아니기에 오진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경우를 전제해 의사의 말이나 진료 결과를 환자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고려해 말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환자는 의사에게 뭐든 말하고 싶어 한다. 대부분의 환자는 의사 앞에서 불안하고 흥분하기 때문에 자기의 증상을 객관적으로 차분하게 말하지 못한다. 그럴 때일수록 의사는 환자가 감정을 가라앉히고 자기 증상을 최대한 차분하게 객관적으로 설명하도록 대화를 이끌어주어야 한다. 일방적으로 중간에 말을 끊거나 끼어들어 환자를 윽박질러 환자를 위축시켜서는 안 되며 환자의 말에 경청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라는 부정적인 화법보다 ‘이렇게 하면 좋아질 겁니다’라는 긍정적인 화법으로 말하는 것이 좋다. 긍정적 희망은 놀라운 치료 효과를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의사는 워낙 다양한 환자와 상황을 접해야 하기 때문에 대화하기도 그만큼 어렵다.

동의보감에는 이도료병(以道療病)이란 말이 있다. 말과 마음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가 명의란 말이다. 우리도 의사와 환자의 진료시간이 길어지고 환자가 의사를 진정 존경하고 신뢰하는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다.

임규홍 경상국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