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 카지노

[정준금 칼럼]대의제의 몰락

국민과 시민은 안중에 없는 대의기관 권력자의 눈치만 보는 국민의 대표들 민주주의의 근간인 대의제 붕괴 위기

2024-08-06     경상일보
▲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 행정학

민의의 전당, 국민의 대표기관, 모두 의회를 일컫는 말이다. 다양한 국민들의 의사를 한데 모아 법을 만들고, 그 법안들이 제대로 집행되는 지 국민들을 대신해 감독하는 것이 본래 의회의 역할이다. 근대민주주의는 바로 이 의회제도에서 출발됐다. 이런 중요한 일을 하는 대가로 일반 국민들은 누리지 못하는 온갖 특권을 부여하고, 수명의 보좌진을 거느리게 하고, 상당한 수준의 보수도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요즘 우리나라 국회를 보면 도저히 국민의 대표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가 없다.

우리 국회에는 타협이나 협상은 없다. 오로지 탄핵과 특검, 그리고 거부권만 있을 뿐이다. 국민들이 원하는, 민생이나 경제·안보와 관련된 정책이나 법안에는 아예 관심이 없다. 비상한 사유가 발생했을 때 매우 제한적으로 사용되던 탄핵과 특검이 이제 일상화됐다. 22대 국회 개원 두 달 만에 야당이 주도하여 처리한 탄핵안이 7회, 특검은 10회에 달한다. 법안은 겨우 6건을 처리했는데 모두 민생과는 관련 없는 것이고 이마저도 다수 야당이 일방적으로 통과시킨 것이다. 야당은 우리 정치사에 유래가 없을 정도로 거칠게 입법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이에 대한 여당의 대응은 고작 필리버스터나 대통령의 거부권에 의존하는 것밖에 없다.

지난 선거에서 야당은 절대 다수 의석을 획득했으나 득표율로만 보면 여당과 5% 정도 차이가 난다. 의석수만큼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것은 아니란 의미다. 그렇다면 야당도 의석수만 믿고 이렇게 막무가내 식 행태를 보이는 것은 장래의 집권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열성 지지층은 박수를 치겠지만 중도성향의 국민들은 오히려 지지를 철회할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여당도 마찬가지다. 선거 패배 이후 기존의 정책지향이나 정부 운용 방법의 변화를 도모해 새로운 출발을 모색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이전과 달라진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계파끼리 권력투쟁에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전혀 집권당답지 않다.

국회는 정당에 소속된 의원들로 구성돼 있고, 정당은 권력을 획득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이를 위해서는 열성 지지층 말고 중도의 스윙보터를 잡아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우리 정치에는 이 상식이 통하지 않은지 오래됐다. 다수의 일반 국민보다 소수의 극렬지지자들만 바라보고 있다. 정치에서 국민이 사라졌다. 국민의 대표가 아니라 ‘팬덤의 대표’로 전락했다. 더구나 우리 정당은 이념적·제도적 기반이 취약하고, 정당의 보스가 공천을 주도하는 비민주적 관행으로 인해 국회의원들이 국민보다는 당의 권력자를 더 중시한다. 국민들의 요구나 의견보다 대통령이나 당대표의 의중과 안위를 더 챙긴다. 국민의 대표가 아니라 ‘권력자의 대표’가 되어버렸다. 결국 민주주의 근간을 이루는 대의제가 붕괴된 지경에 이르렀다.

대의제의 또 다른 한 축인 지방의회도 마찬가지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울산시의회를 보시라. 같은 정당 내에서 서로 의장이 되겠다고 다투다가 법정까지 끌고 갔다. 시의회는 그대로 정지 상태다. 시민들은 안중에 없고 자신들끼리의 권력투쟁만 존재할 뿐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대다수의 국민들은 지방의회의 필요성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지방 차원에서 나타나는 대의제의 몰락이다.

국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좋은 정책을 만들고 집행부를 감독해야 할 국민의 대표들이 정작 국민들을 바라보지 않는다. 국민보다는 권력자의 눈치를 보고 그들의 안위를 걱정하며, 극렬지지자들의 응원 유혹에 빠져 대의제를 파탄시키고 있다. 국회는 민의의 전당이 아니라 혐오와 갈등의 진원지로 전락했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요즘, 국민들을 더욱 지치고 짜증 나게 하는 것은 더위가 아니라 바로 우리 국회다. 대의제의 몰락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근심과 걱정이 들리지 않는지 국회는 여전히 하루하루를 정쟁으로 소모하고 있다. 의회를 통한 권력분립으로 견제와 균형을 이루고, 이를 통해 국민을 위한 통치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 프랑스 사상가 몽테스키외(Montesquieu)가 통탄할 일이다.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 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