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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348)]매미소리 들으며 내발을 씻으리

2024-08-06     이재명 기자
▲ 이재명 논설위원

연일 35℃를 오르내리는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에어컨을 틀자니 머리가 아프고, 선풍기를 틀자니 뜨거운 바람이 분다. 이럴 때 계곡에서 매미소리를 들으며 탁족(濯足)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쾌청한 매미소리는 머리를 맑게하고, 얼음같은 물에 발을 담그는 탁족은 온 몸을 서늘하게 한다.

정약용 선생은 63세 때 우아하게 더위를 이기는 8가지 피서법을 실천했다고 한다. 이른바 ‘소서팔사(消暑八事)’다. 8가지(八事) 피서법 중 매미가 나오는 대목은 6번째 ‘동쪽 숲속에서 매미소리 듣기’(東林聽蟬·동림청선). 탁족은 8번째인 ‘달밤에 개울가에서 발 씻기’(月夜濯足·월야탁족)다. 필자도 최근 영남알프스 계곡에서 6번과 8번의 피서법을 실천한 바 있다.

매미는 짧게는 5년, 길게는 17년간 땅속에서 살다가 장마가 끝날 무렵 비로소 나무로 올라가 우렁찬 소리를 낸다. 이렇게 크고 요란한 울음소리를 내기 위해 매미는 몸통의 절반 이상을 비운다. 그리고 그렇게 2주 남짓 울어대다가 죽는다.

매암이 맵다 울고 쓰르람이 쓰다 우니/ 山菜(산채)를 맵다는가 薄酒(박주)를 쓰다는가/ 우리는 草野(초야)에 묻혔으니 맵고 쓴 줄 몰라라.

조선 영조 때의 가인(歌人) 이정진의 시조다. 느티나무, 팽나무, 느릅나무 등 잎이 우거진 나무 그늘에 앉아 있으면 시원한 바람과 매미소리가 훌륭한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탁족(사진)은 ‘어부사(漁父辭)’에 실려있는 굴원(屈原)의 고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세상을 초탈한 은둔자의 유유자적한 삶을 의미한다. ‘어부사’에서 초나라 충신 굴원은 망국지세의 초나라를 한탄하면서 “뭇사람들이 모두 취해 몽롱하거늘 나 홀로 술 깨어 있고자 했노라. 이런 연유로 추방되었노라.”고 말했다. 그러자 곁에 있던 어부는 이렇게 답했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고(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갓끈을 씻거나 발을 씻는 행위는 후대에 <맹자>에 인용되면서 ‘탁영탁족(濯纓濯足)’이라는 사자성어로 다시 태어났다. 선비들이 계곡에서 탁족을 함으로써 마음과 몸을 깨끗히 한 것도 바로 이 탁영탁족의 이치와 통한다. 탁족을 소재로 한 그림으로는 이경윤의 고사탁족도(高士濯足圖), 이정의 노옹탁족도(老翁濯足圖) 등이 있다.

날씨도 그렇거니와 요즘 정치판은 가마솥보다 더 뜨겁다. 잠시라도 혼탁한 세상을 잊고 매미소리, 계곡물 소리에 침잠하고 싶다.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