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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환의 건축과 여행 그리고 문화(95)]바르셀로나 ① : 구엘공원에서 만난 가우디

가우디를 배출한 바르셀로나 한해 수백만명 가우디 작품 보러 찾아 깨진 타일·도자기 모자이크로 구성 ‘트랜카디스’ 기법의 구엘공원은 상상속 세계 구현 가우디가 그린 동화 권위적 건축양식 즐거운 생활무대화

2024-08-09     경상일보
▲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건축학

한 도시가 재능있는 건축가를 배출하고, 그의 걸작을 갖는다는 것은 도시 전체의 축복이다. 건축적 걸작은 개인의 차원을 넘어 공적 가치를 갖는다. 단 하나의 건축적 작품만으로도 도시의 이미지를 강화할 수 있고, 역사적 문화적 자산으로서 자부심의 근원이 되며, 핵심적 관광자원으로서 경제적 효과까지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파리는 에펠탑으로 기억되고, 시드니는 오페라하우스가 먹여 살리며, 다 죽어가던 빌바오는 구겐하임 미술관 덕에 다시 살아났다.

바르셀로나는 가우디(Antoni Gaudi;1852~1926)를 배출했다. 그가 없었다면 바르셀로나는 결코 오늘날의 명성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한 해에도 수백만 명이 그의 작품을 보기 위해 바르셀로나를 찾는다. 건축가 하나 잘 키운 덕에 도시 하나를 넉넉히 먹여 살리고 있는 셈이다. 대대손손 벌어먹을 수 있는 관광자산이니, 경제적 효과만으로도 세계적 기업 몇개가 내는 수익보다 크다고 할 것이다. 문화자산으로서의 가치와 시민들의 자부심은 덤이라 치자.

학생시절의 가우디는 낙제를 겨우 면할 정도의 괴짜였던 모양이다. 그가 천재성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적극적 후원자를 만났던 행운이었다. 귀족 출신이자 섬유회사 재벌이었던 구엘(Eusebi Guel;1846~1918)은 그에게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제공해 주었다. 그것은 안정된 경제적 기반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아이디어를 마음껏 시도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모름지기 위대한 건축가는 좋은 건축주가 만드는 법이다.

그가 구사했던 건축적 어휘의 대부분은 구엘 공원에서 만날 수 있다. 바르셀로나 외곽에서 지중해를 바라보는 작은 언덕 사면에 조성한 공원이다. 하지만 원래부터 공원으로 계획된 것은 아니었다. 구엘은 이곳을 상류층을 위한 고급주택단지로 개발하려 했다. 이에 가우디는 편안함과 최신기술, 예술성을 갖춘 고품격 전원 주거단지를 구상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인기가 없었던 모양이다. 웅장한 단지 공동시설과 집 2채를 짓고, 사업을 중지하고 말았다. 1922년 시의회가 이를 매입해 공원으로 만든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구엘 공원은 입구에서부터 동화 속의 세계를 연출한다. 겨우 경비실이나 사무실 용도의 건물인데 동화적 상상력이 흘러넘친다. 마치 크리스마스 케이크로 조각된 집처럼 3차원 애니메이션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거친 돌로 만든 벽은 빵처럼 부드럽고, 지붕과 창호의 테두리는 크림처럼 녹아내린다. 앙증맞은 발코니와 아블라크 문양의 탑도 동화적 표현이다.

계단부터는 궁전의 품격이다. 거창하고, 위압적인 궁전이 아니라 애니메이션 속의 우아한 궁전이다. 계단은 신데렐라 궁전처럼 양 갈래로 나뉘어, 곡선을 그리며 우아하게 오른다. 계단 중앙 분리대에 뜬금없이 나타나는 도마뱀과 용머리 분수들이 만화 속 세계로 더 깊게 유도한다. 여기에 알록달록한 색유리 모자이크로 치장해 만화적 상상력을 강화시킨다. 계단의 양쪽 측벽은 성벽의 여장을 갖추었고, 계단 끝에는 그리스 신전 같은 열주가 웅장하게 버티고 있다. 실은 건물이 아니라 테라스형 광장을 떠받치는 기둥일 뿐이다.

그의 발칙한 상상력은 산책길마저 비범하게 만들었다. 아케이드 형으로 만든 길은 경사 기둥으로 인공을 최소화했다. 나무같은 기둥이다. 큰 줄기에서 뻗어나가는 잔가지는 어느덧 난간 같은 형상으로 변하고, 둥지 같은 발코니를 만들었다. 경사진 기둥은 천정까지 올라가 그가 창안한 현수선식 아치로 마감된다. 주변에서 나온 돌을 거칠게 쌓아 기둥 표면을 마감했다. 이로써 울퉁불퉁한 야자수 나무 같은 재질감을 천연덕스럽게 표현했다. 인위적 구조물이 주변 자연에 슬며시 스며들어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흐린다. 돌인 듯 나무 같고, 나무인 듯 돌 같은 그의 천재적 상상력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 구엘공원 주계단

테라스 올라서면 거대한 광장이 전개된다. 바르셀로나 항구와 지중해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위치다. 가우디는 이곳을 그리스 극장이라고 불렀다. 주거단지로 완성했더라면 단지 중심광장이었을 터이다. 광장 테두리는 용처럼 구불거리는 벤치로 마감했다. 벤치 등받이마저도 허투루 처리하지 않은 것은 결벽증에 가까운 가우디의 디테일이다. 깨진 타일이나 도자기를 모자이크로 구성하는 트랜카디스(trencadis) 기법을 사용했다. 주택단지로서 완성이 되지 않아 광장이 헤벌어지게 보이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구엘공원은 가우디가 그린 동화이다. 글이나 그림으로 만든 동화가 아니라 건축으로 만들어 체험할 수 있게 한 건축적 동화라 할 것이다. 때로 괴기스럽기도 하고 때로 장난기가 넘치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상상 속의 세계를 구현했다. 케이크나 캔디와 같은 집, 신전과 같은 열주, 익살스러운 용, 나무뿌리와 같은 돌기둥 등 현실 세계에서는 보기 어려운 소재들로 공원이라는 장소를 창출했다.

그러나 이렇게 비일상적인 소재들이 결코 난삽하거나 조잡하거나 유치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동화 속으로 들어 온 주인공처럼 즐거운 환상에 젖게 한다. 가우디의 천재성은 재료의 물성이나 건축양식에 대한 선입견을 극적으로 반전시킨다는 것이다. 무겁고 거친 재료를 가볍고 부드럽게 만들고, 내장 재료를 외장재료로 사용하고, 권위적인 건축양식을 즐거운 생활무대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하여 근엄한 조형물들을 희화화되도록 만들었다. 마치 진지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포복절도를 유도하는 채플린의 명연기를 보는 듯하다.

한국이라면 이 같은 발칙한 상상력이 실현될 수 있었을까. 만화 같은 설계를 허용해 줄 건축주를 만나기란 마른하늘에 번개맞을 확률이다. 근엄하거나 거창한 랜드마크를 기대하는 관료들과 정치가들에게는 씨알도 안 먹힐 설계였을 것이다. 모름지기 한 사회의 건축적 수준은 결코 건축주의 수준을 넘어갈 수 없는 법이다.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건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