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 카지노

[한분옥 시조시인의 시조 美學과 절제](31)재 너머 성권롱 집에-정철

2024-08-16     차형석 기자

재 너머 성권롱(成勸農) 집에 술 익닷 말 어제 듣고
누운 소 발로 박차 언지 놓아 지즐 타고
아해야, 네 권롱(勸農) 계시냐 정좌수(鄭座首)왔다 하여라.


권주가 부르며 막바지 더위 식혀보자

말복에 입추 바람이라더니 서늘한 바람이 분다. 입추도 지나고 엊그제 잡절인 말복을 넘기니 아침엔 제법 바람이 서늘하다.

입추를 지나면 벼 자라는 소리에 개가 짖는다는 속담이 있듯, 지금은 일조시수가 많아 벼 자라는 속도가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다. 아무리 더워도 우리의 먹거리인 벼농사가 풍년이 들어야 하니 이 복더위를 참고 견디지 않을 수 없다.

더위 속에서도 어찌 풍류가 없을 손가. 풍류를 즐기려면 술이 있어야 하니, 어제와 다른 술, 집에 있는 술과 다른 술 맛을 찾아 나서는 송강 정철의 풍류를 읊은 시조다.

옛날에는 집집마다 고유한 집안 내력이 담긴 술을 빚어서 접빈객을 우선해 왔다. 귀한 손이 오면 아끼는 술로 대접함이 최고의 접빈이었으니까. 또 좋은 술이 있으면 벗이나 이웃을 초대해 함께 나누곤 했다. 어디에서, 어떻게 마실 것인가도 생각해서 한껏 술맛을 돋울 줄 아는 풍류를 즐기던 사대부 문화가 우리들 생활에 젖어 있었다.

필자는 어릴 때 어머니의 부엌에 따라 들어가 할아버지의 사랑채 손님 술상 차림에 수저를 놓기도 하고 잔일을 거들면서 부엌살림을 배우기도 했다.

그저 아무 음식점이나 술집에 들어가, 그 술집에 마련된 술을 즐길 뿐인 지금의 음주문화로서는 개성 있는 풍류문화를 찾을 길이 없다.

▲ 한분옥 시조시인

머지않아 처서(處暑)도 올 것이고 그러면 더위는 접히고 말 것이다. 좋은 날 모(某)월 모(某)일 날을 받아 벗을 불러 권커니 잡거니 풍류 담긴 더위씻김을 해야 할 것도 같다.

‘누운 소 발로 박차 언지 놓아 지즐 타’지 않고도 우리는 좋은 승용차가 있고 ‘아해야, 네 권롱(勸農) 계시냐’ 하며 아해를 부르지 않고도 번개모임도 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다.

사람살이 어디 좋은날만 있느냐는 것이다. 그 동안 적적했던 벗들의 안부도 서로 나누고 권주가를 부르기도 하며 막바지 더위를 식히고 그렇게 사는 것이다. 오늘은 바람이 서늘해서 좋고, 내일은 또 하늘이 높아 행복한 것이다. 한분옥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