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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면주 칼럼]제네바 협정

의사 2000명 증원 사태 갈등 장기화 문정부때 원전 ‘공론화위원회’처럼 국민의 지혜 구해보는 것도 한 방법

2024-09-03     경상일보
▲ 신면주 변호사

일찍이 철학자 데카르트는 ‘인간은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로 인간 존재의 근거를 설명했다. 지구촌 약 80억의 인구가 각기 다른 생각을 하는 존재이므로 이로 인한 갈등과 대립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갈등과 대립의 해소는 정치영역의 책무이지만, 때로는 무력이 지배하는 전쟁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이를 전쟁전문가인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다’로 표현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인류는 자신이 일으킨 전쟁의 희생자를 보호하기 위해 국제조약을 체결한다. 적십자조약으로 알려진 제네바협정은 전쟁 기타 무력분쟁 상황에서도 부상자, 병자, 포로 등은 우선 치료받아야 한다는 인간 양심의 최소한을 선언하고 있다.

작금 의사 2000명 증원사태로 국민은 전쟁터의 환자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 신세가 됐다. 정부는 여전히 의료개혁을 위해서는 의사증원이 필수라는 입장이고, 전공의들은 증원의 전면 백지화를 주장하며 의료현장 복귀를 거부하고 있다. 처음에는 의사들의 본분에 어긋난 행동을 비난하는 여론이 주를 이루었다. 즉 ‘의사들의 주장대로 정부의 개혁 방향이 문제점이 있다면, 얼마든지 광고, 시위, 공개토론, 단식, 삭발 등등의 방법으로 국민에게 알릴 수 있는데, 전쟁에서도 우선되는 환자의 치료를 외면하는 것은 환자를 볼모로 잡는 밥그릇 지키기이다.

의료정책에 대한 당·부의 판단은 국회나 국민의 몫이지, 당사자인 의사가 할 수는 없다. 평소 선생님이라 호칭하며 존중하는 것은 수능점수와 소득이 높아서가 아니라, 아프면 언제든지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의사의 손길에 대한 신뢰, 인도주의의 상징인 의사의 존재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다. ‘의사 면허는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국가가 부여한 것이므로 그에 상응하는 공적인 의무 또한 엄중하게 지켜져야 한다’ 등의 힐책이 많았다.

사태의 장기화로 의료공백이 길어지자, 충분히 예상되는 기득권의 반발을 무마하지 못하는 정부의 미숙한 일 처리에 대한 비난 여론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정부의 미숙함이 곧 의사들의 비인도적인 행동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으므로, 의사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곱지가 않다. 상황은 어느 쪽도 쉽게 물러설 수 없는 제로섬 게임에 직면했다. 정부가 증원을 백지화할 경우 앞으로 어떤 개혁과제도 수행하기 어려운 심각한 정치적 타격을 입을 것이고, 의사들이 굴복할 경우는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최소한의 인도주의적 양심마저 저버리는 부도덕한 집단으로 각인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간 정치권은 특별한 대응이 없다가 다급해지자 여당 대표가 2026년 유보안을 제시하고 있으나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 원자력발전폐기를 선언하면서, 신고리 5, 6호기의 건설 중단 여부가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건설을 재개하자니 원자력발전폐기 선언과 상충 되고, 중단하자니 2조 원이 넘는 손실이 발생하는 등으로 국민의 반발이 거센 진퇴양난의 상황이 됐다.

고심하던 문 정부는 일반 국민 약 500명이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 약 3개월 정도 관련 정보의 제공과 토론 등의 절차를 거친 후에 그 결론에 따르기로 했다. 시민배심원들은 처음에는 건설을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으나. 약 3개월 후의 결론은 의외로 6:4 정도의 비율로 건설 재개 결정을 했다. 문 정부의 원자력발전 폐지 선언과 당시 사회의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양식 있는 국민의 지혜로운 판단으로 잘못된 정책의 피해를 그나마 줄 일 수 있었다.

일반 국민이 일부 국정에 참여하는 참여 민주주의는 주로 좌파 쪽에서 선호하지만, 좌·우를 가르는 본질에 관한 문제는 아니다. 정부도 현 상황의 돌파구로 국민의 지혜를 직접 구해보는 방법을 생각해 볼 만하다. 법치는 주어진 법조문대로 집행하는 것이지만, 정치는 천태만상의 인간사를 조율하는 상상력의 산물이다. 즉 법치는 정치의 필요조건은 되지만 충분조건은 되지 않는다. 법치에 능한 우파 정치인들의 정치적 상상력이 절실한 지점이다.

지독한 더위도 이제 한풀 꺾이고, 결실의 계절이 다가왔다. ‘고통은 신이 내린 선물의 포장지’라는 말대로 상생의 제네바협정이 추석 선물로 주어지기를 기대한다.

신면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