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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붉은 도끼[81]]10부. 운명(6) - 글 : 김태환

2024-09-09     경상일보

마츠오의 질문에 김일환은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다. 일본은 지금 가나라는 문자를 사용하고 있고 조선은 세종대왕이 만든 언문을 사용하고 있는데 모두 중국의 글자를 먼저 사용하다 만든 문자라고 했다. 중국의 한자는 물건의 모양을 본떠 만든 상형문자인데 초기 상형문자를 만든 사람들도 초기의 조선인들이라고 했다.

마츠오는 중국연안에서 발견되는 상형문자를 조선인들이 만들었다는 것은 거짓이라고 했다. 김일환은 애초에 원시 조선인들이 중국연안에 살았었다고 했다. 마츠오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라고 일축해 버렸다.

“이따위 낙서가 무슨 글자라는 것이냐. 글자라면 읽을 수 있어야지.”

“어쩌면 순사양반도 무식하기는 학교선생이라는 자와 똑같군요. 그러니 내가 일본인들이 무식하다는 것이오.”

김일환의 대답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감히 조선의 시골사람이 일본인 순사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나는 마츠오의 안색을 살피니 미간이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속눈섭이 파르르 떨리는 것 같았다.

“기타나이 조센징. 얼른 이 글자를 읽어봐라.”

마츠오의 입에서 거친 말이 튀어나왔지만 김일환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덤덤한 표정으로 서석 앞에 섰다. 김일환은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이 서석에 원시문자를 새긴 사람은 나의 먼 조상이다. 바위에다 이것을 새긴 것은 아주 오랫동안 이야기를 전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일환은 제일 먼저 서석 맨 꼭대기의 그림을 손으로 짚었다. 겹마름모꼴이 다섯 개가 연속으로 그려진 문양이었다. 나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진지하게 김일환의 이야기를 들었다. 마츠오도 분기를 가라앉히고 차분한 표정으로 설명을 들었다.

이 겹마름모꼴 하나는 하나의 부락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곳 대곡천을 중심으로 다섯 개의 마을이 있었다. 대곡천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면 하천이 갈라지면서 갈라진 하천마다 분지가 나타난다. 그 분지마다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보통은 하류로 내려가며 마을이 발달하기 마련인데 이곳의 지형은 독특한데가 있었다. 반곡 마을은 이곳에서 하류로 조금 내려 간 다음에 지류를 타고 올라가면 나오는 마을이다. 반곡 마을을 빼면 나머지 네 마을은 상류로 올라가며 개울이 갈라지는 대로 형성되어 있었다.

첫 번째가 구량 마을인데 바로 하류에서 갈라져 올라간 반곡 마을과 접해 있었다. 두 번째가 두서면사무소가 있는 인보마을이고 세 번째가 전읍 마을이다. 전읍은 예전부터 동을 생산했던 마을로 엽전을 만드는 마을이란 뜻이다. 그다음에 미호 마을이다. 미호 마을은 대곡천의 제일 깊은 끝자락에 있는 마을이다. 미호는 백운산 자락에서 발원하는 탑골샘을 품고 있는 신령한 산을 모시고 있는 마을이다.

다섯 개 마을 외에도 대곡천 하류에 바다에서 가까운 곳에 고래잡이 마을이 있었다. 김일환은 다섯 개 마을이 표시된 위쪽에서부터 사선으로 깊게 그어진 선을 따라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