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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부끄러움에 대해 생각하다

2024-09-20     경상일보
▲ 이옥선 울산 북구청 경제문화국장

이른 저녁을 먹고 동네 산책에 나섰다. 한낮의 더위는 수그러든 듯 했지만 더위의 기세는 여전했다. 더위에 아랑곳않고 운동으로 땀을 흘리는 사람도, 강아지와 함께 산책에 나선 사람도 보였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여름 밤의 습하고 뜨뜻한 이 공기와도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그리 나쁘지도 않았다.

동네를 크게 한바퀴 돌아 슈퍼마켓에서 필요한 물건을 사고 다시 집으로 가는 길. 왕복 6차선의 큰 사거리 횡단보도 앞에서 보행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중년의 여성과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자전거를 탄 남자아이가 함께 횡단보도 앞에 섰다. 좀 전에 신호가 바뀌었는지 한참동안 보행 신호가 바뀌질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중년 여성이 빨간 신호등에 여유롭게 횡단보도를 건너는게 아닌가. 차가 오지는 않았지만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여성의 뒷모습을 지켜보는데 옆에 있던 남자 아이가 여성의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정말 양심이 없네.”

이미 여성은 절반쯤 길을 건넌 상태여서 그 말을 듣지는 못했다.

옆에 서 있던 내 얼굴이 부끄러움에 붉어졌다. 좀 전에 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 아주 짧은 횡단보도에서도 신호를 지켜 건너길 정말 잘 했구나 싶었다. 아니면 아이에게 내 자신이 더 부끄러울 뻔 했다. 아이와 눈이 마주쳤을 때는 그냥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이윽고 초록 보행신호가 들어왔고, 아이와의 어색한 시간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아까 길을 건넜던 여성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어른의 한 사람으로 부끄러웠다. 아이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줘야만 했던 걸까. 스피커라도 대고 아이의 말을 들려줄걸 그랬다.

여름 더위가 길어지니 우리 구 강동해변을 찾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해마다 여름이면 강동해변은 불법으로 몸살을 앓는다. 불법투기 쓰레기, 불법평상 대여, 문화재 주변 불법야영은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필자도 현장에 나가봤지만 행정의 계도만으로는 불법행위를 차단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매일 24시간 감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해변 전체에 CCTV를 설치하기에는 예산도 많이 들어간다. 그렇다고 모든 행위에 과태료를 부과할 수도 없는 게 현실이다. 쓰레기 투기 금지, 문화재보호구역 야영금지 같은 글귀를 적어 넣은 현수막을 곳곳에 걸어보지만 양심을 버린 이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해마다 시민의 양심에 호소해 보지만 양심은 온데간데 없고, 여름철 해변은 불법이 판치고, 인근 주민들은 불편을 이야기한다.

횡단보도 앞에 서 있던 아이의 말이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우리 어른들이 아이에게 보여준 행동에서 아이는 과연 무엇을 배우게 될까.

공자가 제자와 함께 시장을 지나다 걸인이 길가 모퉁이에서 대변을 보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공자는 아무리 걸인이라 해도 부끄러운 것을 모르고 사람들이 보는데서 변을 보느냐며 꾸짖었다.

그리고 다시 길을 걷는데 또 다른 걸인이 시장 길 한가운데서 대변을 보고 있었다. 공자는 이를 그냥 지나쳤다. 제자는 “왜 꾸짖지 않으십니까”하고 물었다. 공자는 “그래도 모퉁이에서 변을 보는 자는 최소한의 양심과 부끄러움이 있어 바뀔 여지가 있으나 길 가운데서 변을 보는 자는 꾸짖어도 그 잘못을 깨닫지 못한다”고 했다.

부끄러움을 모르면 못할 게 없다는 말이다.

지난 여름 우리가 한 행동이 자신에게, 그리고 내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일인지 되돌아볼 일이다. “내년 여름에는 좀 나아지겠지.” 여름의 끝자락, 부끄러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옥선 울산 북구청 경제문화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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