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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변희수 ‘입양’

2024-09-23     경상일보

노란 싹을 밀어 올리는 양파가 있었다
감자도 아닌데 싹을 옮겨 심어주려는 사람이 있었다
눈물을 흘리며 싹싹 비는 양파가 있었다
양파를 달래려고 먼저 울던 사람이 있었다
감자 대신 꿇어앉아 벌을 서던 양파가 있었다
양파보다 더 반질반질한 무릎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양파보다 더 빨리 눈이 짓무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 때문에 뚝 울음을 멈추는 양파가 있었다
양파에게 보따리를 내밀던 사람이 있었다
감자들에게 양파는 하고 물어보면
저요, 저요 하고 구석이 쏟아져 나왔다
붉은 자루 속에 푸른 손이 가득 들어있었다


뭇 생명을 가족으로 거둔다는 것

▲ 송은숙 시인

집 근처를 돌아다니던 고양이가 보이지 않는다. 고양이는 어디로 갔을까. 가끔 인터넷을 보면 유기견센터에서 포메라니안 입양했어요, 밥 주던 길냥이가 새끼를 낳아 입양했어요, 하는 글이 보이던데, 꼬리 잘린 그 고양이도 누군가에게 ‘간택되어’ 눈에 안 띄는 거라면 좋겠다.

입양이란 누군가를 자신의 가족으로 거두는 일인데,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희로애락을 나누는 식구의 개념으로 확대되다 보니 이처럼 애완동물을 집으로 들이는 일도 입양이라 표현하고 있다. 사실 이 시에서 입양이 사람의 아이를 입양하는 것인지, 애완동물을 입양하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양파의 행동을 보니 사람의 아이 쪽으로 기운다. 하지만 아이를 입양하든 유기견이나 유기묘를 입양하든, 입양은 뭇 생명에 대한 ‘연민’을 바탕으로 한다. 눈물을 흘리며 싹싹 빌고, 벌을 서는 ‘양파’가 버틸 수 있던 것은 먼저 울던 사람의 친절이다. 양파에게 보따리를 내미는 일은 연민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양파는? 하고 불렀을 때 저요, 저요 하고 쏟아져 나오는 양파들. 그 간절한 눈빛. 그들 모두에게 매튜와 마릴라에게 입양되어 조잘대면서 마차를 타고 가는 빨간 머리 앤 같은 행운이 있기를.

송은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