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 카지노

[연재소설/붉은 도끼[88]]10부. 운명(13) - 글 : 김태환

2024-09-23     경상일보

처음부터 나를 의심하는 질문은 하지 않았다. 일본인 순사와 조선인 면서기가 함께 피습을 당한 사건으로 조사를 하고 있었다.

문제는 내가 범인들이 누군지 알고 있느냐 하는 점이었다. 나는 세 명의 가공인물을 만들어 내느라 진땀을 흘렸다. 물론 세 명 모두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라고 둘러댔다. 일본 순사들의 조사는 수월하게 피해갈 수 있었다. 상처는 쉽게 아물어 갔다.

그러나 아물릴 수 없는 것은 마음의 상처였다. 아내 김순조와 마츠오가 바람을 피웠다고 했는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어떤 사정이 있어 백운산에서 김일환과 마주치게 되었는지도 궁금했다. 나는 조용한 시간에 아내에게 백운산에서 김일환을 만난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제발 그런 적이 없다는 대답을 듣고 싶었다.

아내는 나의 물음에 화들짝 놀라더니 이내 사색이 되었다. 더 이상 대답을 듣지 않아도 되었다. 김일환이 한 말은 사실이었다. 나는 심한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마츠오의 부인 에리코에게 온 마음이 빠져 있던 나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다. 그것이 서로의 배우자에겐 얼마나 큰 아픔이 되는 것인지 나 자신이 당하고 보니 절실히 느껴졌다.

병원에서 열흘 정도 치료를 받으니 어깨의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어 퇴원을 하게 되었다. 퇴원하는 날 에리코가 병원으로 찾아왔다. 평소에도 파리하던 얼굴빛이 생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몰골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니 심한 죄책감이 들었다. 내가 방심한 탓에 마츠오가 살해당한 것이었다. 도끼를 든 김일환을 말렸어야 했는데 얼떨결에 마츠오를 잡아두는 바람에 살해 된 것이었다. 좀 더 상황판단을 잘하고 적극적이었다면 살인사건으로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 같았다.

마츠오의 시신은 일본으로 운구되지 못하고 언양성당에서 가까운 화장산 기슭에 묻었다고 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물으니 딸 유리를 데리고 귀국하겠다고 했다. 그 전에 마츠오의 살해범을 잡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어떤 연유에서 살해당한 것인지 이유라도 알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날 있었던 일을 자세히 설명해 달라고 했다.

나는 에리코에게도 지어낸 이야기를 그대로 들려 줄 수밖에 없었다. 난데 없는 건달들의 습격이었으며 근동에서는 보지 못한 얼굴들이었다고 둘러댔다. 나는 일본 순사들에게도 내가 먼저 습격을 받아 정신을 잃는 바람에 마츠오가 살해되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고 거짓말을 했었다. 그러니 더 이상 나를 통해서 알아낼 것이 없는 셈이었다. 나는 범인들을 찾아내는데 적극 협력하겠다는 거짓맹세까지 했다.

현실에서는 살인사건에서 벗어나 있었는데 마음 속의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없었다. 일본인이기는 했지만 마츠오는 나와 대화가 통하는 진실한 친구였다. 그날 마츠오의 모습을 떠올리다 보면 두개골이 깨진 채 뇌수가 허옇게 드러난 모양이 떠올랐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몸서리가 쳐졌다. 병원에서 퇴원 한 뒤 며칠 후에 김일환의 소식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