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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붉은 도끼[90]]11부. 백운산 그늘의 사람들(1) - 글 : 김태환

2024-09-25     경상일보

김재성 노인의 일본어 기록물만 그대로 복사해서 약간의 편집만 하면 그대로 한 편의 소설이었다.

그러나 기록을 읽고 난 다음, 무엇부터 손을 대야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먼저 유촌 마을의 김인후에게 사실을 이야기해 주어야했다. 김용삼에게는 20년 전에 일본 노인에게 붉은 돌도끼를 거금을 받고 판매한 사실이 있는지 물어보기로 했다. 더구나 김용삼의 할아버지가 기록 속에 나오는 김일환인지도 확인해 보아야했다.

무엇부터 손을 댈까 망설이다가 먼저 울산대 이하우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교수는 단번에 나를 기억해냈다. 오히려 왜 이제야 전화를 했느냐고 했다.

자신은 내년 2월에 퇴임을 하게 되어 이미 짐을 다 싸놓은 상태라는 것이었다. 미리 연락을 했으면 자료를 좀 챙겨 주었을 텐데 아쉽다고 했다.

나는 김재성 노인의 기록물에 대한 이야기를 대충 간추려서 들려주었다. 이교수는 대단히 흥미 있는 이야기라고 했다. 미호천에서 나오는 홍옥석이 암각화를 새기는데 이용되었을 것이라는 가정은 검토해볼 만하다고 했다.

이 교수와 통화는 두 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내가 궁금한 사실 한 가지를 물어보면 세 가지 네 가지 사실을 알려 주었다. 지금까지 오해하고 있었던 부분이 천전리 각석과 반구대 암각화의 새겨진 순서였다. 나는 천전리 각석이 먼저인 줄 알고 있었다. 이교수는 그것이 굉장한 오류이며 이런 오류들이 자꾸 발생하는 것은 먼저 암각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과학적 근거도 없는 사실을 자신의 감각에만 의존해 발표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표적인 예로 반구대 암각화의 고래를 찾는 사람문양을 처음에 춤추는 샤먼이라고 발표한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그런 주장을 하게 되면 뒤에 사람은 한동안 오류에 빠져 헤매게 된다고 했다.

이 교수는 지금까지 발표된 여러 학설들에 대해 부당한 점을 몇 가지 꼽았다. 첫째가 반구대 암각화를 새긴 사람들이 사연댐 입구까지 밀려 들어와 있던 해안선에 살았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면 지금 해수면 보다 1미터 낮은 곳에서 발견된 황성동의 고래등뼈에 박힌 작살촉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태화강 양안에 바닷물에 의한 침식의 흔적이 하나도 발견되지 않고 있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고 했다.

이 교수의 주장은 고래잡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대곡천에 살던 사람들이 아니라 어딘지 특정할 수 없지만 가까운 해안선에 고래잡이를 하던 사람들이고 암각화에 들렀던 사람들은 동해를 둘러싸고 고래잡이를 하던 여러 집단의 사람들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지금의 극동 러시아와 일본을 아우르는 넓은 지역의 사람들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북방에서 내려온 문화와는 전혀 별개의 독특한 문화가 울산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했다. 그 후에 경주와 포항으로 암각화가 전파되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