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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울산건축문화제 릴레이 기고(1)]보통의 건축

2024-09-30     경상일보
▲ 전우진 건축사·건담 건축사사무소 대표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문화 전반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영화 ‘매트릭스’. 이 영화에는 ‘선택받은 자’인 네오가 기계와의 전쟁을 종결시키고자 ‘매트릭스’의 설계자 ‘더 아키텍트’를 찾아가는 내용이 나온다. 매트릭스 창조주의 이름이 ‘더 아키텍트’라는 점은 그때나 지금이나 나에게 큰 놀라움을 선사한다. 사전적 정의에 있어 ‘아키텍트(architect)’라는 단어는 건축가라는 뜻은 물론, 문화와 사회, 사상 등의 다양한 분야를 설계하는 설계자라는 확장된 의미까지 내포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정관사 the를 붙이고 A를 대문자로 바꿔 ‘the Architect’라고 쓰면 조물주라고 읽혀지기도 한다는 것은 건축이 인류 역사에 있어 어떤 역할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권력이 바뀌게 되면 지배자가 가장 우선한 일들 중 하나는 건축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기 위한 수단일 때도 있었고 시민들 삶의 증진을 위한 도시재정비일 때도 있었으며 산업과 경제부흥을 위한 정치적 방법론일 때도 있었다. 때문에 최고 권력자 가장 가까이에는 항상 건축가가 존재했다. 지배계층의 헤게모니에 건축가가 함께 하는 것이 옳은가 그른가의 논쟁은 차치하고 건축이라는 행위와 건축가의 역할이 우리가 인식하든 그렇지 않든 우리의 삶에, 역사에 큰 영향력을 행사해왔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고인인 된 가수 신해철은 언젠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예전에는 왕족이나 귀족의 재정적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음악가의 역할은 지배계급을 위해 노래를 만들고 연주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매체의 발달로 음악이 대중화되어 고위층만 음악을 향유할 수 있는 불합리한 시대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 시대의 음악가는 특정 계층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중을 위해 봉사할 의무가 있다”라는 말을 했다.

건축가의 역할도 이에 다름 없다. 건축가의 사명은 시대의 흐름과는 무관한 불변의 가치이지만 문화가 발전하고 시민의식이 향상되어 특정집단에 집중되었던 국가의 권력이 대중에게로 환원된 현대사회에서의 건축은 ‘권력자 혹은 특정계층의 권위를 과시하는 정치적 수단’에서 벗어나 ‘동시대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인 우리들이 살아가는 공간’으로서 그 스펙트럼이 크게 확장되었다. 그렇기에 ‘보통의 건축’이라는 시각으로 톺아보면 일상의 모든 곳과 모든 것에는 ‘너무나도 익숙해서 그냥 지나쳐왔기에 미처 인식하지 못 했던 건축적 의의’가 곳곳에 숨겨져 있다. 건축이라는 것은 권위의식으로 과대포장 되어야 할 행위이기 이전에 ‘사람들의 삶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보통의 건축’은 결코 ‘건축의 하향평준화’나 ‘저가보급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지배계급의 지원을 받았기에 ‘궁중음악’일 수밖에 없었던 음악이 시민계급의 지위향상과 경제성장에 힘입어 ‘대중음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처럼 건축 또한 높아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가까이에서 편안하게 만날 수 있는 좋은 건축’으로 거듭나야 한다. 오늘날 건축문화의 후원자는 왕족도 귀족도 고위계층도 아닌 ‘보통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보통의 건축’은 우리가 살아왔던 공간의 그리움이다. ‘보통의 건축’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의 따스함이다. ‘보통의 건축’은 앞으로 우리가 살고자 하는 공간의 희망참이다. ‘보통의 건축’, 그것은 너무나도 익숙해서 스쳐가기 쉽지만 빛바래지지 않는 우리 주변공간의 기억과 흔적, 그리고 가능성이다.

오는 10월17일부터 20일까지 울산문화예술회관에서 제8회 울산건축문화제가 개최된다. 이번 울산건축문화제의 주제는 ‘데자뷰-’다. ‘기시감’을 뜻하는 단어이지만 올해 울산건축문화제에서는 ‘데자뷰’를 조금 더 건축적으로 해석해 “익숙했던 것들을 다시 본다”는 의미를 담았다. 이미 훨씬 오래 전부터 우리의 삶에 깊이 자리하고 있었던 ‘보통의 건축’에 대해 시민들과 편하게 말하고 싶은 울산 건축사들의 진정성이 담겨있다. 그러니 잠시 시간을 내어 ‘대중음악’, ‘대중문화’를 즐기듯 ‘보통의 건축-대중건축’을 한 번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전우진 건축사·건담 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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