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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붉은 도끼[95]]11. 백운산 그늘의 사람들(6) - 글 : 김태환

2024-10-04     경상일보

쭈글쭈글 주름진 피부는 뼈 위에 간신히 걸쳐 있는 듯했다. 처진 눈꺼풀이 눈동자를 거의 다 가리고 있어 고개를 약간 치켜들고 우리를 바라보았다.

“할아버지 저 인후에요. 알아보시겠어요.”

김인후가 잠시 마스크를 벗고 맨 얼굴을 보여주었다. 노인은 겨우 큰집 손자를 알아보는 것 같았다. 손을 뻗어 유리문에 가져다 대었다. 김인후도 얼른 손바닥을 유리문에 가져다 댔다. 유리를 사이에 두고 104세 노인의 손과 63세 손자의 손이 맞닿았다.

“할아버지가 보고 싶었는데 자주 올 수가 없었어요. 지금 나라 전체가 코로나 때문에 난리에요. 보고 싶어도 좀 참으시고 기다리셔야 돼요. 뭐 불편한 것은 없나요?”

노인의 눈에서 눈물방울이 힘없이 흘러내렸다. 사랑을 위해 모든 걸 버리고 낯선 땅으로 달려간 대찬 남자의 기상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맥없이 흘리는 눈물에는 지난날을 후회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노인이 잠시 내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잠시 마스크를 벗어 맨 얼굴을 보여주었다. 그런 다음 공손하게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김인후가 이 사람은 할아버지의 기록을 한글로 풀이해줄 작가라고 소개를 했다. 노인은 다시 한 번 내 얼굴을 힐끗 올려다보았다. 처진 눈꺼풀 아래 광채를 잃은 눈동자와 마주쳤다. 나는 아주 짧은 순간 가슴이 저릿한 느낌을 받았다. 여인을 위해 자기 생을 던져 버린 남자의 마지막 눈빛은 너무나 공허해 보였다. 나는 내 인생의 종말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타올에 싸가지고 온 붉은 돌도끼를 조심스럽게 꺼내어 노인의 앞으로 내밀었다.

“어어어.”

노인이 무슨 말인가 하려고 입을 오물거렸다. 그러나 말이 되어 나오지는 못했다. 김인후가 ‘도끼를 안에 넣어드릴까요’ 하고 물었다. 노인은 고개를 세게 흔들었다. 손가락으로 붉은 돌도끼를 가리키며 무어라고 중얼거렸는데 정확한 의도를 알아차릴 수 없었다.

“알겠어요. 할아버지. 이분이 할아버지가 써 놓으신 글을 모두 읽었어요. 이 돌도끼를 할아버지가 원하는 곳에 놓아드릴 거예요. 그리고 좋은 소식이 있어요. 유리라는 여성분을 알고 계시죠? 그 분이 이곳에 오신다고 했어요. 화가 분이시라는데 대곡박물관에서 전시회를 한답니다. 할아버지도 그 분을 보고 싶으시죠.”

김인후가 말을 마치자 김재성 노인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처진 눈꺼풀이 올라가며 굉장히 충격을 받은 듯했다. 김인후가 며칠 있으면 유리라는 여자가 여기로 찾아 올 것이라고 설명을 했다. 노인의 표정은 그대로 굳어 있었다.

김인후는 면회를 다녀와서도 생기가 돌았다. 작은 할아버지와 면회할 때는 목소리에 물기가 묻어 있었는데 집에 돌아와서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표정이 밝아 보였다. 아무래도 유리라는 일본여자의 전시회 때문인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