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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붉은 도끼[96]11부. 백운산 그늘의 사람들(7) - 글 : 김태환

2024-10-07     경상일보

“작가님 오늘도 저와 함께 주무시고 가시죠.”

나는 안 그래도 다 읽어본 김재성 노인의 기록 내용을 말해주어야 할 것 같았다. 김인후는 냉장고 안에 넣어둔 삼겹살을 꺼내어 프라이팬에 구웠다. 마당 한쪽에 쌈으로 남겨놓은 배추 한 포기를 뜯어와 씻어 놓으니 저녁상이 푸짐했다. 저녁을 마치고 김인후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에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통화 중이었다. 설거지를 마칠 즈음에 다시 전화를 걸었는데 여전히 통화 중이었다.

설거지를 마친 김인후는 차를 끓여왔다. 불그레한 색깔이 고운 차였다. 산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감태나무 잎과 줄기를 넣어 끓인 차라고 했다. 혈액순환과 뼈 건강에 아주 좋은 차라고 했다. 맛을 보니 맛과 향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알고 보면 주변에 널린 것이 약초라며 자신의 약초지식을 자랑했다.

나는 차 맛을 음미해가며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며칠 동안 어렵게 읽어낸 내용이지만 요점만 전달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요점은 우연찮게 일본인 순사가 김일환이란 반곡사람에게 살해되고 김재성씨는 그 일본인 순사 부인이 좋아서 같이 일본으로 건너가 살다가 그녀가 늙어서 죽게 되자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였다.

“기록에는 작은 할아버지가 대곡건업이라는 큰 건설회사를 일으킨 것으로 나옵니다. 들어오실 때 자기지분의 주식을 모두 딸과 사위에게 양도하고 들어왔다고 했는데 그래도 뭔가가 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우리 어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는 작은 할아버지가 일본에 돈을 벌러 갔다고 들었어요. 차마 일본여자와 바람이 나서 간 것이라고 말할 수 없었나 봅니다. 그런데 벌써 한국에 들어온 지 이십오 년이 지났는데 뭐가 더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동안에 일본에 있는 딸이라는 사람과 한 번도 왕래가 없었다는 것도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네요. 이번에 또 찾아온다는 것도 그렇고요. 작은 할아버지가 살아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인데.”

“어쨌든 만나보면 알게 되겠지요.”

김인후와의 이야기는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쉴 새 없이 고속열차가 지나가는 소음이 집을 흔들었지만 이제는 익숙해져서 견딜만했다. 우리는 이루어질 수 없는 조건에도 무모하게 돌진하는 남자들의 생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인후는 불길이 자신의 날개를 태워버릴 것을 알면서도 불길 속으로 날아드는 불나방 같은 게 남자들의 속성이라고 했다. 나는 그런 것 때문에 인류가 종족을 보존하지 않았느냐고 했다.

“총각이 처녀를 보고 그런 것이야 이해가 되지만 왜 짝을 지어 잘 살고 있는 것들이 그러느냐 말이죠.”

김인후는 작은 할아버지의 일탈에도 불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 같았다. 모든 불륜을 용서할 수 없다는 입장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