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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분옥 시조시인의 시조 美學과 절제](39)흥망이 유수하니-원천석(1330~1402년)

2024-10-11     경상일보

멸망한 고려의 옛 성 보며 흘리는 눈물

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도 추초로다.
오백 년 왕업이 목적(牧笛)에 부쳐시니
석양에 지나는 객(客)이 눈물겨워 하노라. -<청구영언>

 

▲ 한분옥 시조시인

가을이다. 파란 하늘을 뾰쪽한 송곳으로 콕 찌르면 금새 파란 물이 주르르 흐를 것만 같다. 먼 곳에서 들리는 젓대소리, 아니 어느 누군가 연주하는 트럼펫 소리라도 들리는 날이면 인생의 황혼을 걷는 필자도 어느새 애틋하고도 그리운 옛 정서에 사무쳐 눈물이라도 주르르 흘리고 말 것만 같은 가을이다. 그토록 심했던 폭서를 비켜나니 어김없는 가을이다.

가을은 우리의 깊은 곳의 정서를 건드린다. 아프면 아픔대로 슬프면 슬픔대로 그리움은 또 그리움으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신만의 깊은 정신의 세계로 파고든다. 가을은 참으로 인간적인 계절이다. 인간이 인간다운 사고(思考)를 거쳐 정신적 탈바꿈으로 다시금 도약하게 하는 계절이다. 참 좋다.

며칠 전 가을비 듣는 사이 국화는 그 긴 여름 다 지나고 드디어 꽃망울을 맺기 시작했다. 마당귀를 들고나며 국화 피기를 기다리는 사이 또 한 계절은 지고 말겠지. 이렇듯 사람의 한 세상도 계절 따라 지는 것이다. 인간만도 아닌 것이 나라의 우명도 흥할 때가 있으면 반드시 쇠 할 때가 당도한다.

어느 구멍으로 방죽이 터져 세상을 뒤엎을지도 모른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볼일이다. 한 개인의 인생살이나 국가의 운명이나 매 한가지다.

원천석(元天錫)은 고려 말 충신이다. 조선 왕조가 개국하자 치악산에 들어가 은둔생활을 했다고 한다. 태종 이방원을 가르친 바가 있어 태종이 즉위한 다음 여러 차례 불렀으나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백년 고려 왕업도 나라의 흥망이 정해진 운명이고 보니, 고려의 옛 성도 가을 풀에 지나지 않고, 목동의 피리 소리에 지나지 않음에 석양을 지나는 나그네는 눈물겨운 것이다. 고려 왕조의 신하로서 노학자는 만월대의 가을 풀더미와 목동의 피리 소리에, 인간도 나라도 영원 할 수은 없다는 것을 상기하며 흘리는 눈물이다. 한분옥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