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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면주 칼럼]수상 소감

한강 작가·제프리 힌턴·퀴리 부부 등 자신보다 인류의 미래를 먼저 걱정하는 노벨상 수상자들의 수상소감 큰 울림

2024-10-15     경상일보
▲ 신면주 변호사

작가 한강은 노벨문학상 수상 첫 소감을 “전쟁이 치열해서 날마다 모든 죽음이 실려 가는데 무슨 잔치를 하고 즐거워서 기자회견을 할 것이냐.”는 말로 대신했다고 아버지 한승원 작가가 전달했다. 이는 작가의 문학적 시선이 평화와 복지의 깃발 아래, 폭력과 전쟁이 자행되는 인간 실존의 부조리에 대한 저항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아직도 지구촌에는 절대 선인 종교와 이념의 미명 아래 벌어진 전쟁으로 수많은 작은 인간들이 살상되고 있는 현실에서, 작가의 감수성은 떠들썩한 축하 멘트를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작가의 작품이 주로 우리 현대사의 이념대립으로 인한 폭력적 사건인 6·25, 4·3, 5·18 등에서 죽어간 소시민들의 이야기를 섬세하고 미적인 문장으로 풀어나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집단에 매몰된 작은 개인의 휴머니티에 대한 절박성을 가진 작가로서, 노벨상 수상을 마냥 즐거워만 할 수 없다는 그의 소감은 작품보다 더 큰 울림을 준다.

올해 노벨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한 제프리 힌턴 토론토대 교수는 인공지능 분야의 대부이자, 개척자로 AI 머신러닝의 기초를 확립한 공로로 수상자로 지명됐다. 그는 2013년 AI 분야의 상업화를 서두르는 구글에 입사해 부사장까지 올랐으나 작년 구글과 결별했다. 구글을 떠난 이유를 AI분야에 상업적 목적으로 천문학적 투자를 해대는 구글을 벗어나, AI가 인류에게 미칠 해악을 자유롭게 경고하기 위한 학자적 양심 때문이라 한다. 그는 “이런 것들이 우리를 지배하는 것을 어떻게 막을지 진지하게 걱정해야 한다.” “앞으로 10년 내에 자율적으로 인간을 죽이는 로봇 병기가 등장할 것”이라며 내부 고발자를 자처하며 거듭 경고를 이어 나가고 있다. 이번 노벨물리학상 수상 소감에서도 AI는 산업혁명에 비견될 정도로 인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 하면서도 통제 불능의 상태가 될 수 있는 실존적 위협에 대한 우려를 숨기지 않았다.

방사능 물질인 ‘라듐’과 ‘플로늄’을 추출해 인류에게 핵의 시대를 열어준 ‘퀴리 부부’는 라듐을 발견한 첫 번째 노벨물리학상 수상 소감을 “라듐은 범죄자의 손에 들어가면 위험 물질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연의 비밀을 아는 것이 인류에게 도움이 될지, 인류가 그 지식을 제대로 활용할 만큼 성숙한지, 오히려 그 지식으로 인해 해를 입는 건 아니지 스스로 물어보아야 합니다. 나는 인류가 새로운 발견에서 악보다 선을 더 끌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라고 했다. 자연의 비밀을 밝힌 과학자로서 그 발견이 인류에게 미칠 영향에 대한 고민과 번뇌가 담겨있다.

이렇듯 노벨상 수상자들의 수상 소감은 최고의 지적인 업적에 대한 철학과 인류의 앞날을 바라보는 우려의 시선으로 압축된다. ‘마리 퀴리’의 걱정대로 인간의 선한 의지와 결합한 핵은 의료, 에너지 분야 등에서 인류의 복지에 기여하고 있지만, 핵무기는 인류의 생존을 송두리째 위협하고 있다. 다이너마이트의 발명으로 큰 부를 이룬 노벨은 다이너마이트가 살상 무기로 사용되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그의 형이 심장마비로 사망하자, 한 신문사가 노벨이 사망한 것으로 착각해 ‘죽음의 상인 사망하다’로 부고 기사를 실었다. 노벨은 이를 보고 충격을 받아 매년 인류의 평화와 복지에 공헌한 사람을 물리학 등 5개 분야에서 선발해 자신의 유산으로 노벨상을 지급하기로 했다. 즉 노벨상의 기준은 각 분야의 단순 1등이 아니라, 인류애의 공헌도가 포함된 것이다.

최고 지성들의 잔치인 노벨상 수상자 발표에 대중들은 통속적인 열광에 취해 그들의 고뇌와 염원이 담긴 수상 소감을 쉽게 지나치기 마련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인간의 지성에 기반한 과학적인 업적이나 이념 등은 인간의 선한 의지와 결합할 때에만 의미가 있음을 토로하고 있다.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정의와 도덕률을 동반하지 아니한 지성은 인류의 생존에 해악으로 작용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늘 생업과 가정사로 허덕이며 먹방과 노래방 축제에 익숙한 우리 소시민들로서는 인류의 미래 운운은 언감생심이다. 다행히 한강 작가의 수상을 계기로 최고 지성들의 고뇌와 한숨을 한 번쯤은 같이 하는 품격있는 가을을 기대해 본다.

신면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