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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의 발자취를 찾아]남자·여자를 향한 잘못된 관념, 참회 통한 깨달음 성취 역설

(8)차이 화해를 위한 수행 - 대승육정참회(大乘六情懺悔) 태화강 상류 반고사서 사미승 생활한 원효의 발자취를 찾아 인간 세계 차별문화의 거의 모든 측면이 응축돼 있는 성차별 문제 모든 유형의 차별문제가 이로부터 발산하고 수렴되는 근원적 과제 차이를 ‘독자적, 변치않는 실체·본질’로 간주하는 무지 집중 비판 정신과 신체에 배인 잘못된 관념·행위 뉘우치는 대승의 도리 강조

2024-10-15     차형석 기자
▲ 사람들 / 39.4 x 54.5cm / 유화 / 권영태 작
인간세계 차이 차별 가운데서도 여성과 남성의 문제는 오래된 현재 진행형이다. 양성생식(兩性生殖)을 통해 종의 번성을 이루는 생물들의 ‘이성(異性)에 대한 태도’에 있어, 인간종은 단연 독특한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처럼 이성을 가치평가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 인간에게 이성은 종 번식을 위한 상대에 그치지 않는다. 여성과 남성의 모든 차이는 차별적 평가의 근거로 취급된다.

이성에 대한 인간의 가치 평가적 태도는, 차이를 언어에 담아 분류·비교·평가하여 장기 기억하고 전승하는 언어능력이 그 발원지다. 그리고 먹거리 확보, 가계 전승, 전쟁, 국가 운영 등에서 성별 역할을 할당하는 문명의 운영 방식이 성차별 문제에 구조적으로 가세하고 있다. 여기에 성차별 인식을 교리에 반영한 일부 종교들이 성차별 제도 및 그 문화의 최후 방어선으로 기능하고 있다.

부당한 평가와 대우를 차별이라 한다. 문화와 문명의 성차별적 수립과 일부 종교의 교리적 지원으로 인해 성차별 문제는 장기간 은폐되었다. 방치되고 정당화되던 성차별 문화와 양상이 전방위적으로 들추어지고 비판적 성찰과 극복의 대상이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오랜 농경사회가 산업사회, 정보화 사회 등으로 변하여 문명의 하부 구조가 바뀌고, 그에 수반하여 성별 역할을 규정하던 문명의 토대 자체가 재수립된 것이 거시적 원인이다. 또한 교육의 보편화와 사회의 정보화가 이룩한 지식 습득과 확산의 전방위적 개방과 고도화는, 성차별 문제를 사회적 보편 의제로 지속시키는 동력이다. 이 모든 것은 근대 이후 불과 100~200년 사이에 자리 잡은 변화다. 거론 자체가 금기시되던 성적 지향성 문제도 본격적으로 수면에 떠올라 성차별 담론의 범주 확장에 가세하고 있다.

성차별 문제에는 인간세계 차별 문화의 거의 모든 측면이 응축되어 있다. 또 모든 유형의 차별 문제와 내적·외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언어로 차이를 분류하는 인간이 안게 된 근원적 과제는 ‘차이를 보는 시선’의 문제다. 모든 유형의 차별 문제가 이로부터 발산하고 또 수렴된다. 차이 문제는 언어인간이 안은 근원적·보편적 과제다. 이 문제를 다루고 풀어가는 수준과 능력이 곧 개인과 집단, 문화와 문명을 평가할 수 있는 잣대다. 그런 점에서 성차별 문제는 인간의 모든 것을 고스란히 비추어내는 거울이다. ‘차이를 보는 시선’을 기준으로 삼아 성찰하면 기존의 철학과 종교를 재해석하고 다시 평가할 수 있다. 이 말은, 향후의 철학과 종교는 ‘차이를 보는 어떤 시선’을 담아내느냐에 따라 가치와 전망이 결정된다는 의미다.

인간은 진화의 어느 단계부터 유사한 특징·차이들을 언어에 담아 분류한다. 그로 인해 차이들을 비교·평가·판단·분석·예측·기억하는 능력이 단기간에 고도화한다. 그러자 현상과 세계를 ‘언어·개념의 질서’로 포착하는 이해 능력이 발현된다. ‘관점을 통해 판단하고 평가하는 인간’이 된 것이다. 이 언어인간은 ‘동일성·독자성·불변성’이라는 언어적 허구를 선택한다. 언어·개념으로 분류한 현상의 특징·차이를 ‘동일·독자·불변의 것’으로 간주해 버린다. 차이 구분의 명료화와 일관성을 위한 선택이다. 그래야 이해 능력이 정밀해지기 때문이다.

인간은 언어가 지시하는 내용을 ‘동일성·독자성·불변성 관념’으로 채색하였다. 그렇게 하면 이해가 명료하게 되어 혼란스러운 문제를 잘 풀 수 있을 것이라 여긴 것이다. 그러나 언어에 담긴 내용의 실제는 ‘섞임·관계·변화에서 발현하는 잠정적·역동적 특징과 차이’다. ‘동일·독자·불변이라는 언어적 허구’와 ‘섞임·관계·변화라는 사실 그대로’가 지속적으로 불화하고 충돌하는 사태.-이것이 붓다가 주목한 ‘인간 특유의 보편적 고통 상황’(苦)이다. 언어인간은 ‘언어 허구’와 ‘언어 실제’의 불화에서 발생하는 후유증에 전방위적으로 시달린다. 성차별 문제는 그 후유증의 전형이다.

성차별을 비롯한 차이 차별의 원점에는 언어인간의 ‘동일성·독자성·불변성 관념’이 자리 잡고 있다. 모든 차별 인식, 그 제도와 문화는, 동일성·독자성·불변성 관념에 기대어 있다. 차이를 동일·독자·불변의 것으로 간주하게 하면, 강자들이 우위를 차지한 ‘차별의 수직 질서’가 안정적으로 관리되기 때문이다. 강자와 약자의 차이와 특징을 모두 ‘동일성을 유지하는 불변의 것’으로 믿게 하는 것이야말로, 강자를 위한 차별구조를 지속시킬 수 있는 든든한 안전판이다. 그런 점에서 붓다는 새삼 주목된다. 브라만 혈통의 순수동일성과 그 우월성 주장을, ‘조건에 의한 발생’이라는 연기 통찰로 비판하면서 동일성 관념의 토대를 허물기 때문이다. 붓다는 혈통의 실제가 ‘변화·관계의 역동적 조건들에 의한 혼종(混種)’이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혈통 동일성 관념에 의한 계층 우월주의’를 연기적 사유로 통렬하게 깨부순다. 그의 대표적 제자들 가운데 사회적 차별 대상인 천민이나 여성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매춘 여성도 그의 가르침에 따라 성자가 되어 교단의 지도자가 된다.

원효는 붓다의 통찰을 대승의 언어로 계승하고 있다. 특히 차이 현상을 ‘독자적이고 변치 않는 실체나 본질’로 간주하는 무지를 집중적으로 비판한다. 동시에 그 대안으로서, ‘변화·관계의 사실 그대로에 의거한 차이들의 호혜적 열린 관계’인 통섭(通攝)을 삶과 사상의 중심부에 세운다. ‘차이들의 상호 배제와 정복 관계’를 ‘호혜적 자비 구조’로 재편하는 길을 열고 동참할 것을 간곡히 호소한다.

그의 저술 가운데 <대승육정참회>(정신과 신체에 배인 잘못된 관념과 그로 인한 행위를 뉘우치는 대승의 도리)가 있다. ‘차이들의 화해와 자비 관계’를 땅 위에 구현하는 실천을, ‘참회’(懺悔, 과거의 허물을 뉘우치고 다시는 범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는 수행)를 매개로 펼치는 글이다. 길지 않은 글이지만 원효의 안목과 문제의식이 잘 압축되어 있다. 주목되는 것은, ‘남성과 여성을 향한 잘못된 관념에 대한 참회’를 통해 최고 수준의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다고 말하는 점이다.

‘성차별 관념이 ‘꿈과 같이 실제가 아닌 것이라고 거듭거듭 성찰하는 이해’(夢觀)가 익으면 ‘한결같은 경지’(如夢三昧)을 이루게 된다’라는 그의 말은 특히 주목된다. ‘성차별에 대한 성찰과 이해’를, 선정(禪定)이라는 마음 차원의 변화를 성취하는 ‘깨달음 수행’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남성과 여성을 불변의 본질로 구분하는 차별 관념’(男女二相)은 모두 나의 꿈이어서 끝내 ‘실제의 것’(實事)이 아니니, 무엇을 근심하고 기뻐하겠으며 무엇을 탐내고 성낼 것입니까? 자주자주 사유하여 이처럼 ‘꿈과 같다고 보는 이해’(夢觀)를 점점 익히면, ‘꿈과 같다고 보는 이해에 의한 삼매’(如夢三昧)를 얻습니다. 이 삼매로 말미암아…긴 꿈으로부터 시원하게 깨어나면, 곧 본래부터 ‘[고통세계에] 흘러 다니던 일’(流轉)은 끝내 없고 다만 ‘하나처럼 통하는 마음’(一心)이 ‘[온전함과] 하나처럼 통하여 같아지는 자리’(一如床)에 누워 있음을 알게 됩니다.…이것을 ‘대승의 도리로 여섯 가지 지각 능력을 참회하는 것’(大乘六情懺悔)이라고 말합니다.”(‘대승육정참회’ 중에서)

글=박태원 울산대 철학과 명예교수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