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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정일근의 여행편지 〈11〉 울산 장생포항

2004-11-02     경상일보


당신은 장생포 항으로 가는 길을 알고 있습니까?
 울산의 대표적인 랜드마크인 공업탑 로터리 부근에서 장생포 항을 찾아간다고 합시다. 공업탑 로터리 5개의 출구 중에서 장생포 안내판을 보지 못하고 로터리를 빙빙 돈다면 당신은 출발부터 짜증스러울 것입니다.
 야음동을 지나 장생포 항을 찾아가다 울산석유화학공단을 만난다면 더욱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이 길이 바다로 가는 것이 맞아? 몇 번이나 차를 세우고 물어볼지도 모르겠습니다. 굴뚝이 빼곡하게 솟아있고 철제 구조물이 버티고 있는 공장들 그 뒤편에 장생포 항이 웅크리고 숨어 있을 것이라 상상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입니다. 당신이 그리워하는 바다 장생포 항은 이 도시와 바다 사이에 무장 바리게이트를 친 것 같은 공단지역을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가야 만날 수 있습니다. 인근 울산항으로 오가는 대형화물차들은 바다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해 속도를 늦추어주는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장생포로 가는 길은 이 도시의 끝으로 가는 길입니다. 사람의 마을을 밀어버리고 공단이 점령한 "미래의 폐허"를 찾아가는 길입니다. 영화 "맥드 맥스"의 한 장면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도 두려워하지는 마십시오. 우리가 장생포 항을 찾아가는 것은 아직도 푸른 바다가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바다는 길의 끝이 아니라 길의 시작이기에 지금 장생포 항으로 가는 것입니다.
 장생포 항은 한국 최대의 포경기지였습니다.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IWC)가 포경 중단을 선언할 때까지 고래들의 항구였습니다. 다시 포경 재개를 기다려온 장생포 항은 그 기다림 때문에 많이 늙어버렸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아직은 아물지 않은 상처처럼 포경의 흔적이 장생포 항에 남아 있습니다.
 장생포 항으로 들어서다 보면 제일 먼저 비스듬하게 누워있는 포경선 한 척을 보게될 것입니다. 뱃머리에 고래를 잡던 포를 단 녹슨 폐선에서 포경이 중단된 장생포항의 현주소를 읽을 수 있습니다. 그 앞에서 무심히 낚시질을 하는 노인의 모습을 당신도 보았다면 항구와 포경선도 사람과 함께 늙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장생포초등학교를 찾아가면 학교 앞에 고래를 잡던 포가 놓여져 있습니다. 예전에는 고래턱뼈가 함께 세워져 있었는데 누군가가 세웠다는 기념비만 남아 있을 뿐 턱뼈는 부서져 버리고 없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장생포 아이들의 동심이 잠시 그곳에 머물다 갈 뿐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고래고깃집들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고래잡이는 중단되었으나 아직도 고래고기의 맛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잠시 즐거워질지 모르겠으나 턱없이 비싸져버린 가격에 깜짝 놀라고 말 것입니다. 이제 고래고기는 예전처럼 서민들의 맛이 아니라는 사실에 씁쓸해질 것입니다.
 여기서 당신이 돌아가신다면 당신은 다시는 장생포 항을 찾지 않을 것입니다. 충분히 절망했을 것입니다. 몇 장의 기념사진을 남기고 돌아갈 길을 서둘 것입니다. 묻고 싶습니다. 혹시 당신은 안도현 시인의 시 "고래를 기다리며"와 젊은 시인 손택수의 시 "장생포 우체국"을 읽어보았는지요?
 많은 사람들이 절망하는 장생포 항의 풍경 속에서 오직 시인들은 희망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같은 장생포 항에서 시인들은 무엇을 보고 갔을까요. 시인들이 장생포 항에서 본 것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이며, 포경의 추억이 아니라 고래의 생명성이며, 늙은 장생포 항이 아니라 여전히 젊고 푸른 바다였습니다. 나는 그것을 "장생포의 힘"이라 이름하고 싶습니다.
 천천히 장생포 항의 길을 따라 걸어보십시오. 제 철이 돌아오는 바다메기(꼼치)를 말리는 장생포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며 그 바다에 낚시 줄을 던지고 있는 무심의 강태공을 만날 수 있습니다. 먼 바다로 열린 바닷길로 배들은 무시로 오가고 하얀 갈매기 떼들이 날고 있습니다.
 그 바다에서 자유를 느끼지 못한다면 당신은 영원히 자유로워질 수 없을 것입니다. 공장과 도시가 내버린 바다가 아니라 비정한 그 곳을 떠나온 "자유의 바다"가 여기에 있습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새로운 길이 시작되듯 나는 장생포 항에서 내 안에서 열리는 수많은 길들을 지금 보고 있습니다.
 당신은 장생포항으로 가는 길을 알고 있습니까?
 그 길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길이 끝나는 장생포의 추억 속으로 찾아가는 길이고, 또 하나는 길이 시작되는 장생포의 바다로 가는 길입니다. 선택은 당신 몫입니다.


고래를 기다리며
안도현

고래를 기다리며
나 장생포 바다에 있었지요
누군가 고래는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했지요
설혹 돌아온다고 해도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요,
나는 서러워져서 방파제 끝에 앉아
바다만 바라보았지요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치는 게 삶이라고
알면서도 기다렸지요
고래를 기다리는 동안
해변의 젖꼭지를 빠는 파도를 보았지요
숨을 한 번 내쉴 때마다
어깨를 들썩이는 그 바다가 바로
한 마리 고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요
(1999년 제13회 소월시문학상 수상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