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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탑순례]천년세월 이끼도 범접못한 `백탑`

2004-11-24     경상일보
 
"그"라고 부를까. 그대, 아니면 그이가 좋을까.
 그가 되었든, 그대라고 부르든 알싸함이 입안에 감돈다. 그를 만나러 가는 날은 가슴이 떨린다. 이 옷 저 옷을 꺼내 입어보지만 마땅하지 않다. 훤칠한 키, 완숙한 아름다움, 청신한 기품을 지닌 그와 어울리는 옷차림은 없기 때문이다.
 그는 신사다. 하얀 턱시도를 입고 이제 막 연주를 마치고 관객을 향해 어깨를 좍 펴고 서서 박수를 받는 멋쟁이다. 그래서 그 주위를 종일 맴돌 내 옷차림에 신경이 쓰인다.
 언젠가 매화가 필 무렵, 하늘하늘한 꽃무늬 블라우스를 입고 그를 만나러 갔다가 바람의 시샘을 받아 지독한 감기에 걸렸었다. 지난 여름에는 치마를 입고 나섰다가 넘어져 무릎을 다치기도 했다.
 나는 즐겨 청바지를 입고 점퍼와 모자를 푹 눌러 쓰는 것이 일상의 차림인데 그를 만나러 갈 땐 다르다. 여자답고 우아하게 그리고 품위까지 염두에 두다보면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천년동안 이어온 순결한 미에 어울리는 옷차림은 청바지나 운동화가 아니다.
 한때, 그와 열애에 빠졌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나 혼자 일방적인 연모였다. 가슴 저미게 보고 싶어지면 혼자서 불쑥불쑥 찾아갔다. 그러다 나를 믿지 못하는 남편이 슬쩍 동행이 되기도 했다. 답사모임을 끌고 자주 그를 만나러 갔고 멀리서 온 손님들의 의견도 묻지 않고 찾아가 자랑스레 보여주곤 했다. 아마 우리나라 탑 중에서 가장 자주 갔고 오랜 시간을 머문 곳이 나원리 오층석탑이다. 그래서 눈을 감고도 훤히 그려낼 수 있다.
 달빛 내리는 보름밤, 뙤약볕이 내리쬐는 날, 마른 풀 냄새나는 늦가을, 펄펄 눈발 날리는 날도 찾아갔다. 외진 산자락에 홀로 서 있어 외로울 거라는 구실을 삼아 만나러 가지만 그는 항상 늠름하고 당당하며 쭉 뻗은 키는 장대함으로 빛났다.
 그는 순백의 신사다. 매끈하고 부드러운 몸매를 천년동안 지켰고 8세기 통일신라의 예술혼을 간직한 채 높이 솟아 주위를 압도하고 있다.
 늦가을 아침. 국보 제 39호인 경주시 현곡면 나원리에 위치한 높이 9m의 거대한 나원리 오층석탑을 만나러 갔다. 아침 기운은 쌀쌀하게 옷 속을 파고든다. 나원역을 지나 그의 모습이 조금씩 보이자 가슴은 콩닥콩닥 뛴다. 그를 향한 열정이 가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다.
 탑은 아침 햇살에 선이 분명한 그림자를 만들어 위용을 자랑하고 천년 세월을 지나오며 이끼조차 범접하지 않는 흰 화강석은 변함 없이 숭고함을 보여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나원 백탑" 이라 부른다. 변함 없는 모습이 기이하다하여 신라 팔괴의 하나로 알려진 탑이다.
 경주에 조성된 통일신라 오층석탑은 나원리 오층석탑과 장향리사지 오층석탑이 전부다. 삼층이 아닌 오층석탑을 세워 부처의 세계에 닿으려했던 그들의 의지가 고스란히 나타난 탑이 나원리 오층석탑이다.
 보통 석탑은 금당 앞쪽에 자리 잡는다. 이 탑은 금당 뒤 높은 언덕에 오층으로 층수를 높여 상승감을 강조하였다. 그리하여 멀리서도 바라보며 간절한 기원을 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형산강을 건너는 사람, 서라벌을 드나드는 사람도 탑을 보며 안녕을 빌었을 것이다. 들녘에서 일을 하는 농부들도 허리를 한번씩 펼 때마다 탑을 향해 불법의 세계에 초대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거대한 탑들은 보통 많은 부재를 사용한다. 하지만 나원리 탑은 최소한의 부재로 완벽한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고 있다. 4장의 돌로 이루어진 아래기단은 각 면에 양 우주와 3개의 탱주를 정연하게 새겼다. 위층 기단도 4장의 돌로 면석을 두르고 각 면마다 2개의 탱주와 우주를 새겼다. 지붕 돌 1,2층은 덮개 돌과 층급받침이 별석이나 다른 층은 모두 하나의 돌로 되어있다.
 오층의 탑은 거대하기에 자칫 둔중할 수도 있지만 어디서 보아도 날렵하다. 모서리 전각의 반전이 커서 날아갈 듯하며 이는 높은 층수와 어울려 경쾌함으로 이어진다. 신라 장인의 힘이며 관용이다.
 이 탑을 볼 때마다 놀라운 것은 칼로 자른 듯한 지붕돌의 층급받침이다. 돌을 깍은 것이 아니라 마치 두부 모를 자른 듯 그 매끈함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래서 탑 가까이 다가가 한참동안 위로 치어다 본다. 이런 완벽함을 바라보는 내 몸은 점점 줄어들어 하나의 점으로 남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1996년 해제수리 작업 중 3층 옥개석에서 사리함이 나왔다. 그 사리함은 변형되지 않아 통일 신라 사리 장엄 방식을 잘 보여준다. 그 속에서 출토된 탑과 불상 또한 완전하여 그 당시의 불탑과 불상 조각 양식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한다.
 이 퇴락의 계절에 오층탑 앞에 서면 괜히 힘이 생긴다. 그에 대한 연모의 정을 차곡차곡 쌓을 수밖에 없다. 해가 점점 하늘 높이 솟아오른다. 탑을 둘러 싼 넓은 풀밭은 불법의 바다처럼 햇빛이 출렁댄다.
 사마귀 한 마리가 탑신에 붙어 볕 쪼임을 한다. 천년의 역사와 교감을 나누는 사마귀는 아직 겨울 준비를 하지 못한 모양이다.

◇주변 볼거리
나원리에서 멀지 않은 현곡면 가정리 구미산아래는 천도교의 성지이자 최제우의 탄생지인 용담 성지가 있다. 경주시에서 약 12㎞ 떨어진 곳으로 최제우 유허비와 건너편 산 중턱에 묘가 있고 최제우가 도를 깨쳐 동학을 개창한 용담정이 있다. 용담정은 상당동안 황폐하게 방치되었다. 그러던 중 1968년 현지 교인들의 성금으로 정화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청아한 기운이 넘치는 주위 분위기가 경건함을 갖게 한다. 입구에서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가장 높은 곳에 용담정이 있다. 숲길을 걸어 올라가면 아늑하고 고요함에 젖게 된다.
 나원리 오층탑을 보고 나오는 길에 들릴 곳은 경주시 석장동 동국대 동편 야산에 위치한 금장대 암각화다. 금장대는 형산강의 지류인 서천과 북천의 합류지점인 청소(淸沼) 주변의 정자 이름이었는데 정자는 없어지고 산 이름을 대신하여 금장대라 불린다. 이 금장대는 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곳이며 경주 출신 김동리의 소설 무녀도의 산실로도 유명하다. 이 곳에서 1994년 암각화가 발견되었다. 이는 금장대의 역사를 삼국시대가 아닌 선사시대로 올려놓는 의미 있는 발견이라 세상의 관심을 끌었던 곳이다. 이 곳에는 인면암각화가 다수 보이는 것이 큰 특징이다.

◇찾아 가는 길
울산에서 경주 시내로 들어가 경주 역을 지난다. 경주 역에서 포항 쪽으로 난 7번 국도를 따라 가면 황성공원이 나온다. 여기서 좌회전하여 927번 지방 도로를 따라 가면 금장교를 건너고 다시 안강으로 가는 925번 지방 도로와 만난다. 여기서 우회전하여 2㎞ 정도 가면 나원역 표시가 있고 철길을 넘어 가는 다리가 있다. 이 다리를 건너 우회전하면 나원역이 나오고 조금 더 가면 멀리 앞쪽으로 탑이 보인다. 마을길을 따라 가다 금부산업 건물이 나오고 나원사라는 안내판을 따라 아주 좁은 흙길을 따라가면 탑 앞 주차장에 이른다. 용담성지는 현곡면으로 되돌아 나와 영천으로 가는 927번 도로를 따라 4㎞ 정도 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