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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광렬의 문화 엿보기〉(52)식물에 대하여

2005-01-12     경상일보

고대 인류는 나무를 신성시하였으며, 또한 비를 신(神)의 정액(精液) 쯤으로 여겼다. 그도 그럴 것이 봄비가 온 뒤에는 어김없이 새순이 돋아나니, 모든 식물의 "신랑"은 비를 내리는 신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인간을 닮은 신을 숭배하는 종교가 보편화된 뒤에도 문화권마다 이러한 나무들에 대한 외경심은 남게 된다.
 중국 도교에서는 서왕모(西王母)가 키웠다는 복숭아 나무가 환대를 받고, 기독교 에서는 성자 보니파키우스가 이교도의 성지에서 신성시되는 참나무를 베자, 그 곳에 전나무가 자라났다는 믿음 때문에 지금까지 전나무를 크리스마스 트리로 애용하고 있다. 또 불교에서는 싯다르타가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하여, 보리수를 신성한 나무로 생각하고, 연(蓮)은 열매가 익을 때 꽃을 피우기에, 스스로 생성하는 신성한 꽃으로 여겨져, 인도의 모든 종교에서 우주와 우주 창조의 상징이 되기에 이른다.
 식물은 영화 〈반지의 제왕〉과 〈해리포터〉의 나무들처럼 인간에게 꿈과 신화를 가져다 주는 생명체다. 원시사회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자연현상들이 식물의 정신적인 속성에 의해 쉽게 설명될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 인류는 이러한 식물의 초자연적인 힘을 간과 내지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식물의 신비한 분위기와 정신적인 면면들이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현대에 들어와 인간은 식물의 보복에 직면해 있다. 숲의 파괴가 계속되면서 매년 심각한 속도로 녹지대가 줄어듬에 따라 아프리카의 말리, 니제르, 차드 같은 곳에서는 이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 대부분이 사라지고 마는 등 지구 전체 육지면적 중 40% 이상이 건조지대로 변하고 말았다. 녹지가 줄어든다는 것은 곧 식량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류의 녹지 파괴와 건조지대의 자연적인 확장은 심각한 기아사태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동남아에서 발생한 지진 해일 피해지역에서도 식물은 그 몫을 단단히 했다. 해안 개발을 위해 맹그로브 나무를 베어버린 곳은 초토화 된 반면, 산호를 보호한 곳은 온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모든 재난은 단지 더 큰 재난의 전조(前兆)에 불과할지 모른다.
 고대문명의 상징인 메소포타미아 벽화에 등장하는 왕의 오른손에는, 보석이 아닌 솔방울이 쥐어져 있으며, 올림픽 우승자의 머리에는, 금관이 아닌 월계관이 씌워지지 않는가. 다시 식물이 신성시 되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무심히 지나치던 우리 마을 당산나무를 오늘 퇴근길에 유심히 살펴봐야겠다. 시인·울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