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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광렬의 문화 엿보기(54)-쉽고도 어려운 일들

2005-01-26     경상일보
"살면서 꼭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설문조사를 하면 어떤 답들이 나올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부·명예·권력 등과 관계되는 일을 꼽지 않을까 한다.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란 일류대 졸업생이 입사 면접 자리에서 사장의 질문을 받았다. "부모님을 목욕시켜 드리거나 닦아드린 적 있습니까?"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면 부모님을 꼭 한 번 닦아드리고 내일 이 시간에 다시 오세요"
 그날 저녁 날품팔이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어머니는 아들이 발을 씻겨 드리겠다고 하자 의아해했다. 그는 면접 얘기를 하고 어머니의 발을 난생 처음 만져 보았다. 발바닥은 시멘트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일찍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밤낮 없이 험한 일을 하며 학비를 댄 어머니의 발. 앙상한 발등과 굳은살 때문에 아무 감각도 없는 발바닥을 쓰다듬는 그의 손길이 가늘게 떨렸다. 한 쪽 어깨에 어머니의 손길이 닿자 그는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책 〈살아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탄줘잉 지음)에 나오는 대목이다. "살아있는 동안 꼭 하라"고 말하는 49가지는 거창하지 않다. 이를테면 위에서 말한 부모님 발 씻어드리기 외에 은사님 찾아뵙기, 일기 쓰기, 영광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기, 다른 이의 말에 귀 기울이기, 악기 하나 배워보기 등이다.
 그러나 이런 일들의 공통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며,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까지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점이다. 회색 콘크리트 정글 속에서 승리를 위해 혹은 살아남기 위해, 건물 숲 사이를 질주하느라 놓쳐버린 소박한 인간미와 잔잔한 행복감을 다시 되찾을 수 있는 순간들이다.
 그 중에서 부모님 발 씻어 드리기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언제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정말 철들어 효도 한 번 하려고 할 땐, 이미 우리 곁에 안 계신다. 오랜 객지 생활로 홀어머니를 자주 찾아뵙지 못한 필자는, 임종도 지켜보지 못한 채 입관 직전에서야 싸늘한 어머님의 팔 다리를 만져드릴 수 있었다.
 "아흔 다 되가시는 어머니/쪼그라진 손가락으로 하나, 둘 셈을 하시며, 당신보다 더 오래 살 것 같은 병아리에게 구구구~ 모이를 주신다 (중략) 앞뒤 맞는 셈이 당신 나이 외엔 별로 없었던 세상사/어머니에겐 우리 10남매도 이렇게 타산이 맞지 않는 것이었다/그러나 앞으로 세다 안 되면 뒤로 세고/구구구~ 기꺼이 이런 헛셈을 계속하신다.(졸시, "어머니와 병아리" 중 일부) 시인·울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