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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광렬의 문화 엿보기(55)-TV 안보기

2005-02-02     경상일보
지금은 도처에 TV가 깔려 있지만 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TV는 참 귀했다. 동네 만화방에서나 그 요술 상자를 접할 수 있었는데, 그것도 누구나 볼 수 있었던 게 아니라, 소위 단골들만 볼 수 있었다.
 만화 열 권 정도 빌리면 노란 마분지 조각에 가게 "트레드마크"인 파란 고바우가 찍힌 TV시청권 한 장을 받을 수 있었는데, 어린 우리들은 그 누런 마분지 한 조각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었다.
 시골 친구 하나는 TV 통 속을 앞뒤좌우 열심히 살피곤 했는데, 이유인즉 주인아저씨가 틀림없이 조그마한 난장이들을 통 속에 넣어놓고 재주를 부리게 한다는 것. 특히 멀쑥하게 서 있던 빠알간 진공관들은 어린 우리들에게는 지금의 외계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TV는 호기심의 대상은 커녕 호기심을 갉아먹는 괴물인 듯하다. TV는 무엇보다 책을 멀리하게 하며 상상력, 추리력 등을 떨어뜨린다. "알권리"(Right to know)가 있으면 "모를권리"(Right not to know)도 있지 않을까. 차라리 현대인들은 너무 많이 알아서 탈이다.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반강제적인 시청이 되고 있는 비교육적, 비생산적인 TV 프로그램들은 정보의 바다에서 표류하고 있는 우리 현대인들에겐 총체적 스트레스제공자일 뿐이다.
 지난해 말 교육방송(EBS)이 방영한 특집 다큐멘터리 〈TV가 나를 본다-20일간 TV 끄고 살아보기〉 프로에 참가한 가족들은, TV를 안보기 시작한 후 며칠간은 금단현상에 시달렸으나, 이내 독서와 운동, 음악 감상 등 각자 할 일을 찾게 되었으며, 무엇보다 가족 구성원 간의 대화 시간이 늘어나, 가정이 이전보다 훨씬 더 화목하게 됐다고 했다. 한 마디로 TV가 사라지는 그 자리를 단란한 가족이 차지하게 된다는 뜻이다.
 우리가 흔히 TV를 바보상자라고 하는 이유는, TV라는 매체에서 발하는 정보를 지나치게 신뢰하는 경향에 따라 시청하는 사람들이 쉬 주관을 잃게 되고, 그 결과 지나치게 수동적이고 무기력하게 되니, TV의 순기능과 역기능의 합은 제로섬도 채 못 된다는 뜻일 게다.
 솔직히 아이들에게 "TV 좀 그만 보라"고 자신 있게 야단칠 수 있는 부모는 얼마나 될까. 눈을 뜨면 습관적으로 리모컨을 들고 TV부터 켜는 아빠, 주중 미니시리즈며, 주말 연속극까지 온통 드라마에 빠져 있는 엄마. "중독"하면 커피나 담배 등을 떠올리겠지만 실은 비만, 자폐증, 지능저하, 학습부진 등을 유발하는 TV가 훨씬 더 무서운 것이다. 시인·울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