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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광렬의 문화 엿보기(58)-목욕탕 이야기

2005-03-03     경상일보
역사상 목욕을 가장 좋아한 민족은 로마인이었다. 로마인들은 목욕을 개인의 행복과 쾌락을 위한 가장 중요한 행위로 생각했다.
 또 목욕탕을 휴식과 함께 사교, 건강, 오락 등을 즐기는 다목적 장소로 여겼다. 기원전 33년에 율리아 수로가 건설돼, 귀하게 여기던 물을 지천으로 펑펑 쓸 수 있게 되자, 공중목욕탕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번창하기에 이른다.
 시저를 비롯한 위정자들도 인기관리를 위해 앞다퉈 대중목욕탕을 세워나갔다. 황금기의 로마에는 무려 11개의 제국 목욕탕과 926개의 공중목욕탕이 열기를 뿜고 있었다. 목욕사치와 낭비가 절정에 달하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목욕탕이 나오기 시작한다.
 폭군 칼리굴라는 목욕탕을 궁전처럼 꾸미고, 그 안에 신전과 분수, 그리고 샘물이 흐르는 석굴과 산책로, 심지어는 음악당과 철학자들이 담소할 수 있는 정원까지 만들어 놓았다. 이에 질세라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6천명을 수용하는 대형 욕장 바닥에 모자이크를 깔고, 사방 벽을 이집트 산 대리석과 황홀한 프레스코화로 장식했다. 소위 쿠어하우스라 불리는 다목적 홀은 도서관과 체육관, 화랑 등으로 사용했다. 이만하면 목욕탕 때문에 로마가 망했다는 이야기가 그리 헛말은 아닌 듯 싶다.
 필자는 소위 ‘달목욕’을 한다. 한달 목욕비가 고작 4만원이니, 로마의 대중탕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것이다. 10년 이상 한 목욕탕에서 아침 세수를 해 오는 동안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때밀이 아저씨, 이발소 아저씨, 그리고 동네 단골손님 몇몇과는 몸 구석구석까지 아는 사이가 되었다.
 공수래 공수거라 했던가. 목욕탕에선 젖먹이부터 80 노인까지, 모두 빈손이다. 모두가 발가벗고 있으니, 황제도 표시가 없다. 로마의 오현제 중 히드리누스 황제는 평소 대중탕을 애용했었는데, 어느 날 힘들게 목욕을 하고 있던 늙은 노예 하나가 그에게 때밀어주기를 청해온 바, 황제는 두 말 하지 않고 그 노예의 때를 밀어주었다 한다.
 돈, 지식, 권력, 명예 모두 벗어버리고, 아파트 호수나 학교성적, 통장 비밀 번호 등과는 판이하게 다른, 플라스틱 옷장 번호를 맨발에다 걸고, 우린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목욕을 하는 것이다.
 "사는 것이 전쟁인데/4천원이 주는 평화는 어떤 휴전 협정보다 더 값지나니,/힐끗 보고 마음껏 보여주는 자유(自由) 또한 덤으로 얻는 도시의 유일한 DMZ/아! 세상살이 대중탕 속만 같아도"(졸시, "대중탕에서"의 일부) 시인·울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