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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방울을 들고나선 '생쥐'

2005-05-11     경상일보
학교에 왔지만 근 점심시간이 돼서야 도착했다. 도시락은 싸왔지만 빈 도시락이었다. 부잣집 아이들 책상을 맴돌며, 마치 해녀들 해산물 채취하듯 밥과 반찬을 젓가락으로 집어, 반은 입으로 반은 빈 도시락으로 옮겼다. 채워진 도시락은 집에 있는 지지배배 제비 새끼들 같은 동생들 몫이었다.

밤엔 무엇을 하는지 오후 시간엔 마냥 책상에서 졸기만 한다. 그러던 어느날 그가 밥이 든 도시락을 싸왔다. 밥이 든 도시락, 반찬은 비록 왕소금에 번데기뿐이었지만. 다시 고등학교 졸업 30주년 기념행사장, 그는 놀랍게도 부장검사가 되어 나타났다. 헝그리정신이 그를 사법시험에 합격시킨 것이다.

소년가장이었던 그 친구, 이제야 그때 그 도시락에 대한 궁금증을 부담 없이 풀 수 있겠구나 싶어 물어봤더니, 그는 얼굴만 붉힐 뿐 대답이 없었다. 아니 기억이 나지 않는다 했다. 그 대신 요즈음은 사법시험도 과외를 해야 될 수 있다는 말을 뜬금없이 전해온다. 이제 개천에서 용 나오는 시대는 지났다했다.

우린 돈 없이는 공부 못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서민들에겐 과외는 고사하고 과목 당 수권씩 되는 문제집과 참고서 사는 것마저 버겁다. 60년 혁명과 개혁을 했노라 외치는 우리, 교육제도에 관한 한 입다물어야한다. 왜 우린 입시제도에 관한 한 이렇게도 무능력한 민족일까. 입시제도가 갈팡질팡하는 것은 소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기득권이 있어서이며, 그 기득권층에 방울을 달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달콤한 기득권, 일류대 나온 것만으로도 행복한 나날들… 누가 이 나라에서 감히 성스럽기까지 한 이 기분을 망칠 수 있단 말인가. 해마다 입시철만 되면 연출되는 풍경, 교문에다 엿 붙이고, 염주 알 굴리며 기도하고, 매스컴은 대학의 서열화와 수도권과 지방의 괴리를 조장하고… 자기 자식 합격하라고 교문 앞에서 빌고 기도하는 것은, 남의 자식 떨어지라고 주문 외우는 것과 같다. 귀신도 그런 기도는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칠 일이다. 패스트푸드 같은 토막지식을 주입시키는 일은 이제 그만 두어야한다. 국민투표로 결정할 문제가 있다면, 1순위가 부의 세습과 신분고착화를 가져오는 입시제도일 것이다. 그저 수동적으로 따라갈 뿐이었던 아이들이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고양이에게 방울을 달겠다고 나선 생쥐들, 그래 너희들이 희망이다. 다시 뜬금없이 30년 전, 그날이 무슨 날이었기에 그 친구 밥이 든 도시락을 싸왔을까?

시인·울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