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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도와 주역]차 한잔에 고산선생 안빈낙도 배워

2005-05-16     경상일보
지난주 다도반이 남도 일번지로 갔다.

완도에서 배를 타고 보길도 선착장에 도착하자 일행은 '낫대 두러메니 기픈 흥을 금치 못해 펄떡 뛰는 고기' 잡아놓고 기다리시는 오늘의 주빈 고산(孤山) 선생과 우선 소주로 400여 년 만의 오랜 회포를 수작(酬酌)으로 풀었다.

보길도에선 가장 명당이라는 동천석실에서 손수 빚은 차를 한 잔 내 놓으며 이 자리가 천하제일로 차 맛 나는 자리라고 은근히 풍수지리 실력을 자랑했다.

연꽃 모양을 닮은 부용동을 한 바퀴 돌아 세연정(洗然亭)에 오르곤 "세상에 이런저런 힘들고 하찮은 일들이 있어도 다 씻고 살아야 한다", "어차피 붙잡아도 가는 세월이 아니더냐. 세상 별 것 아니다. 너무 애쓰고 살 필요 없더라"며 귀한 햇차 한 통씩을 건네 주었다.

선생은 51세 되던 병자호란 당시 조선 인조(1637년) 임금이 청나라에 항복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세상을 등지고 제주도로 가던 중 풍랑으로 정박한 곳이 보길도였단다.

선생은 문학 뿐만 아니라 주역에 능통해 풍수지리에 일가견을 지녔기에 직접 세연정과 동천석실을 만들었다고 했다.

세연지의 일곱 개 바위 중 혹약암(或躍岩)이 일행의 발길을 잡았다.

'혹 떼는 바위라' 선생이 임금 한 번 해볼 요량으로 총을 빼볼 심산은 아니었을 거고, 혹 이 세상 등지고 사는 자를 임금이 다시 부르면 성군으로 모셔 놓아야지 하는 야무진 다짐을 하진 않았을 터이다.

그렇다면 이 세연정 안에 가장 크고 힘찬 바위를 혹약암이라 선생은 왜 이름 하였을까? (혹약암은 주역 제1과 하늘편 혹약제연에서 따옴) 혹약제연은 혹 뛰다가 잘못 되더라도 연못에 떨어지니 궁디(엉덩이) 깰 염려 없다는 뜻이다.

어쩌면 이쯤에 자신이 인간이 되었나 안되었나를 한 번 시험해 보자는 것일까.

아니면 이 참에 이제는 하찮은 세상과목은 다 떨쳐 버리고 신선으로만 살지, 만에 하나라도 하늘 목을 확 비틀어 잡고 세상을 혁명해 볼 어리석은 맘이 생기면 천하에 하수란 걸 기억하자는 선생의 다짐이었으리라.

일행 중 누가 或(혹)에 심자가 붙으니 이상하다고 고자질(?) 하는데 귀여운 동자들과 미희들이 어부사시가를 부르며 군무를 추고 나왔다. (요사이 유행하는 들차회와 산사음악회의 원형이었다)

우리도 신선경에 빠져 지는 해를 잊고 있는데 저 해남 두륜산 일지암에서 초의 스님이 점잖치 못하게 차솥에 물이 다 식는다고 연달아 핸드폰을 걸어 왔다.

이를 눈치챈 선생은 무슨 소리냐? 보길도에 오면 전복죽 맛 보며 밤바다와 일박해야 제 맛이라 야단하시니 어쩔 수 없이 일행은 어른 말씀을 따르기로 했다.

통리해수욕장 민박집까지 노래는 잔잔한 파도를 타고 젓가락 장단에 맞춰 간간이 이어져 왔다. "신선은 아무나 되며 사랑은 아무나 하나 전생에 복이라도 지어놔야지~ "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낚싯대는 쥐고 있다 탁주병 실었느냐

우는 거시 벅구긴가 프른 거시 버들숩가.

배 저어라 배 저어라

석양이 기우니 그만하고 돌아가자

돛 내려라 돛 내려라

정승도 부럽잖다 만사를 생각 말자.

문수학당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