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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도와 주역]대립과 모순 한 잔 차향으로 승화

2005-07-11     경상일보
 
깜짝 놀라 들고 마시던 찻잔을 던지고 일어난 원효는, '아! 큰 일 났구나' 하며 중국에 있는 종남산 운제사 법당이 무너지려는 찰나를 귀신같은 천안통으로 내다보고는 차 마시던 차판(소반)을 그대로 집어 던져버렸다. 마침 그 절엔 천 명이 넘는 많은 스님들이 공부하고 있었다. 허공 위에 소반 하나가 빙빙 돌고 있는 괴상한 장면을 보자 스님들이 모두 절 밖으로 뛰어나와 그것을 구경하는 순간, 법당이 와르르 무너져 버렸고, 동시에 공중에서 돌고 있던 소반도 땅에 떨어졌다.

생명을 건진 스님들이 소반을 주워 '해동원효 척판구제'라고 쓰인 글귀를 보고는 매우 신기하게 여겨 바로 그 원효 스님을 찾아 신라를 와서는 모두 성인이 되었다고 하며, 그 산을 천성산 (千聖山)이라 부르고, 소반을 던진 곳은 척판암이라 불렀단다. 원효 대사가 천성산에서 주로 화엄경을 가르친 곳을 화엄벌이라 하는데 그 천성산 화엄벌에서 '원효화엄 다도법회'가 열렸다. 대중은 역시 천명의 스님들이었다.

그 찻자리에서 기똥 찬 그림이 하나 연출되었는데, 원효 대사를 위해 꽂은 다화가 너무나 기막히고 예술적이었다. 아래 마을에선 이 때쯤이면 다 지고 말 보라색 파아란 붓꽃이 고도높은 천성산에서, 이 다회를 위해 이제껏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 힘찬 억새 군락지 속에서 황홀하게 교교한 자태를 품어내고 있었다. 그 자태가 얼마나 섹시했던지- 겉모양을 보면 남성의 그것을 닮았고 속을 들여다 보면 여성의 그것을 닮아- 보는 이들로 하여금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였다.

이를 두고 주역에선 태극이 음양을 낳고, 음양은 사상을 낳고, 사상은 8괘를, 8괘는 64괘를 낳는다고 했나보다. 특히 중국에서 온 무불과 현덕 두 스님이 꾸민 '경전 끌던 소'라는 연극이 하이라이트였다. 내용인 즉 어느 날 경주 동대사에서 원효 스님이 금강삼매론을 막 탈고하고 있을 즈음 갑자기 방문을 차고 들어오는 사포가 "야, 이놈 원효야! 너와 내가 전생에 공부할 때 경전 매고 다니던 소가 방금 죽었다. 빨리 장례를 치르러 가자"는 소리에 원효는 친구 사포의 어머니가 죽었다는 것을 직감하고 뛰어나가다 마시고 있던 차 사발을 발로 차 깨뜨리곤 단숨에 달려간다.

염을 마친 원효가 장송가로 "죽지 말지어다, 나는 것이 고통이다, 나지 말지어다, 죽는 것이 고통이다"하고 소리를 높이자 사포가 "웬 중놈이 그래 말이 기노, 간단히 못하느냐? 죽은 귀신이 언제 그 잘난 말을 알아듣겠나!"고 대갈하자 원효는 언제나 자신보다 한 수 높은 사포의 말에 기도 펴지 못하고 "생사고(生死苦)"하고 다비식(茶毘式)을 끝내는데 극 후미에 그 소(사포 엄마)를 위해 올린 헌다 잔의 찻물이 두 사람과 관중들의 뜨겁게 흘린 눈물이, 천성산 화엄벌을 적시고 말았다.

사포는 전생에 원효의 스승이었다. 그는 도인으로 이 세상에 와 가장 미천한 뱀을 잡아 살아가는 땅꾼들을 달래며 살았고, 그 어머니는 전생에 비록 소 새끼였지만 공부하는 이들을 위해 육보시 한 공덕으로, 이 세상 가장 값 나가는 도인의 어머니로 한 등급 업그레이드 하여 화신할 수 있었던 돌고도는 인생유전 드라마였다.

영원히 식을 줄 모르는 황금 도끼자루를 만들어 들고는 이 자루에 끼워 "하늘 받칠 기둥을 깎고 싶다"며 신라 땅 전역에 TV 공개 구혼(?) 작전을 펼쳐 무열왕의 여동생을 낚은 첫날 밤에 설총의 아버지가 된 원효. 우리 다도가 이런 원효 스님까지 올라간다. 원효의 걸림 없는 무애정신이 우리가 지향하는 세상과 온갖 모순들이 난무해도, 서로 대립과 쟁투를 극복하여 전체를 위해 윈윈하는 화쟁사상으로 차 한 잔에 승화 시켜간다.

시기 질투는 세상을 맛내는 양념으로 존재해야 하지만 그것이 불거져 전쟁으로 비화하는 어리석은 일은 사라져야 할 것 같다. 어젯밤에 마셨던 물은 달콤했지만 오늘 아침에 다시 마시려니 해골 바가지에 벌레들이 우글우글한 물인 걸 알고 욱- 하며 토할 것이 아니라 "세상만사 마음먹기 달렸군!" 하면서 대인을 위해 뜨거운 눈물로 달인 차를 마시고 내려오는 길에 천성산 운무는 너무 아름다웠다. 문수학당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