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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 하나에도 주역이치 통달

2005-07-25     경상일보
 
"이 놈, 수염은 죄가 없어. 수염을 다치지 말고 나의 목을 치도록 하라!"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樹脂父母)라. 서슬 퍼런 칼이 목을 치는 사형장에서도 덤덤하게 소학을 강의한 소학동자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

성리학의 도가 처음으로 동으로 건너와 시작되었다고 자부하는 경북 현풍 도동서원을 찾았다.

동방5현의 첫머리(首賢)를 차지하는 한훤당 선생의 도학을 계승하기 위해 퇴계 이황과 한강 정구가 세운 도동서원. 우리나라 도학은 고려 때 안향이 가지고 들어오고 야은과 포은에 이어 김숙자와 그의 아들 점필재에서 한훤당으로 도통(道統))에 바탕으로 둔다. 우리 성리학이 학문보다는 인격 수양을, 지식보다는 실천을 강조하게 된 것도 이런 선생들의 창조적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원 앞은 낙동강이 유구하게 흐르고, 뒤에는 공자님(仲尼)을 머리로 였다는 대니산(戴尼山)의 줄기가 흘러 내려와 기운이 떨어진 곳이다. 원래 비슬산에 있던 것을 이 곳으로 옮기며 이런 명당의 입지를 고려한 것 같다. 다람재에 올라보면 낙동강을 향해 돌출해 있는 작은 구릉, 자라 한 마리가 유영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입구에 세워진 수월루(水月樓)에 오르면 멀리 달려온 긴장의 발걸음을 풀게 한다. 이 곳이 자라 형국을 알리는 증명이라도 하듯 층계단 위에 자라 석상이 부리는 애교가 한번 더 미소를 당긴다. 남의 집 주인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주인공을 불러 보라는 환주문(喚主門)은 꼿꼿한 갓을 쓴 선비들의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도록 문을 낮췄다. 선비에게 마음 낮추는 겸겸지도로, 너의 주인이 누군가를 묻는다. 어른들의 섬세한 마음 하나하나에 고개가 저절로 떨어진다.

서원 마당 동쪽은 서로 사랑하며 공부하라는 거인재(居仁齋), 서쪽은 공부하는 놈들이 의리라곤 개뿔도 없으니 눈을 크게 떠보라는 거의재(居義齋)가 있다. 인(仁)은 동쪽, 의(義)는 서쪽이고. 염치와 예(禮)는 남쪽, 지혜(智)는 북쪽에 두고, 신의(信)은 중앙에 두는 주역의 방위도를 따랐다. 그래서 한훤당의 선생(김종직)과 제자(조광조)가 유독히 사약을 마시며까지 인의(仁義)를 앞세웠을까.

선배들의 방은 공부가 많이 된 원형기둥으로 깎았고, 후배들은 아직 공부가 모자란다고 모있는 기둥을 깎아 세워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으로 선배와 후배의 엄격한 법도를 세웠다. 마당에서 강당으로 오르는 바닥돌과 계단돌도 12지지상과 6효를 어김없이 지키고 있다. 12지지는 12달, 12시를 나타내고 6효는 상하사방을 살피는 성인의 지혜를 말하는데 "성인이 우러러 천문을 관(觀)하고 구부려 지리를 찰(察)하여 주역을 만들었다"고 하는 바다.

중정당(中正堂)을 오르내리는 출입을 다람쥐 꼬리로 보인 석공의 위트는 탄성을 지르고, 더 기가 찬 것은 기단인데, 돌생김 따라 가위질과 바느질로 과연 석축을 짤 수 있을까 싶다. 그 높은 기단 사이로 여의주를 문 비룡(飛龍)이 머리를 내밀고 승천하는 모습은 걸출한 제자가 나와 천하를 몰고 다니라는 바람일 것 같다.

이곳은 보물(350호) 담장이 있다. 자연석을 가지런히 놓은 지대석 위에 막돌을 쌓고, 그 위에 목·화·토·금·수 5단으로 암기와를 눕히고, 다시 1m 간격으로 수막새로 박았다. 담장의 암기와와 수막새! 된장에 고추박기다. 이 세상은 한 남자와 한 여자, 일음일양의 일희일비가 도의 바탕자리란 걸 보여주는 인테리어 기법에 다시 놀란다. 담장이 지형에 따라 꺾이고 높낮이가 바뀌며 돌아가는 물굽이식(河回) 담쌓기는 누가 보아도 보물이다.

무오사화와 갑자사화 소용돌이 속에서 생을 마감한 한훤당, "인생은 한번 추우면(寒) 한번 덥다(暄). 공부는 유치원(小學) 때 모든 걸 배우나 늙은 임금도 실천하기 힘든다" 평생을 소학으로 공부하고 소학으로 마친 분.

마당을 나오다 자로 잰듯이 깎아 삐친 서원 용마루 일직선을 보며 가슴이 섬뿠했다. 제자가 묻었다. 선생님의 도를 남이 물으면 무어라 해야 합니까? 천하를 하나에 꿴 일이관지(一以貫之)라 하여라! 던 공자님 말을 연상시키는 애누리 없는 일자 용마루 선.

입구로 나오자 서원을 지을 당시(400년전) 기념식수한 은행나무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뜨거운 땀을 흘리고 있었다. 행단(杏亶) 그늘 아래 학동들의 소학 읽는 소리가 우렁찼다. 부생아신(父生我身)하시고 모국오신(母鞠 吾身)하셨다…. 문수학당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