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도와 주역]인간 최고미덕 겸양을 되새기며
2005-08-15 경상일보
이곳 겸암정에 허수료(虛受寮)라는 요사체가 있는데 역시 대단한 당호다. 이 집에 사는 사람은 꽃다운 젊음이 늘 있을 수 없으니, 항상 사랑을 녹슬지 않도록 기름지게 왕래시키고, 사람을 사귈 때도 저 연못이 통째로 산을 받아들이듯 받아야 할 사람이라면 마음을 통째로 비우고 애인 받아들이듯 모든 사람을 잘 사귀어 나가라는 큰 가훈인 것 같았다.
주역은 훈수를 이렇게 한다. 사랑을 발가락으로 간질간질 해봐야 맛을 모르고, 장단지로 허벅지로 정을 내봐야 감칠만 난다. 아~, 어디로 가야 진정한 사랑을 나누는 자리가 있단 말인가? 하고 촛불을 들고 찾아 나서면, 주역을 만든 작자가 정답을 가르쳐 줄테니, 대가는 목숨을 담보하란다. 목숨보다 더 귀한 사랑을 나누는데, 너라면 목숨을 아까워 하겠는가. 정답은 동동왕래(憧憧往來)- 아이들처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말고 깨벗은 채, 순진무구하고 천진난만하게 오로지 사랑을 위해 노고를 아끼지 말고 동동- 왕래하란다.
도인은 세상을 동동하며 살아가는데, 세상이 그러하질 못하니 도인이 산을 찾고 물을 찾아 갈 수 밖에 없었던가. 진정한 도인은 시장 바닥에서 콩나물 두부 사고 팔면서도, 서로 좋게좋게 해야 한다니(내가 밑져야 남이 좋아한다) 도학이 쉬운 과목은 분명 아닌 것 같다.
겸암정 아래 8m 지점에서 토끼길로 깎아 세운 절벽을 잡고 물돌이 따라 내려가면 그 아찔아찔한 맛은 어느 세상에서도 볼 수 없다. 서애와 겸암 두 형제가 한밤중 공부하다 머리 식힐 쯤에 중간 지점에서 만나 매일같이 담력을 테스트 해 본 자리란다. 그 토끼길 끝에 서애의 정자 옥연정사가 있다. 옥연정사 바로 위가 겸암을 모시는 화천서원. 삐꺽하고 대문을 열기 전에 위를 쳐다보니 유도문(由道門)이다.
공자님께 어느 제자가 물었다. 선생님, 꼭 성인의 공부를 해야만 인간 구실을 할 수 있습니까? 공부 안하고 살면 세상 못 삽니까? 이런 시비조의 말투에, 공자님께서 찬찬히 깊은 숨을 고르시곤 이렇게 대답했다. 저 마당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이 문지방을 넘지 않으면 안되재? 세상을 살자면 세상을 바로 살고 간 성현의 공부를 참고하지 않고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단 말인고? 그런 방법 있으면 나에게도 가르쳐 줘라. 나도 이 더운 날에 공부하지 않고, 술이나 마시며 잠이나 자게 했던 유도문. 이 문을 넘어 가자니 왠지 찻잔 든 손이 파르르 떨렸다. 문수학당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