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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인물]주유

2005-11-17     경상일보
 
백만대군 조조에게 이기고도 승리는 공명에게


삼국지를 읽다가 주유(周瑜)를 만나면 잠시 책장을 접어두고 뜰에 내려서서 호흡을 늦추고선 긴장을 풀었다가 다시 그를 대한다. 그의 인간다운 준엄한 기상. 장부다운 지략이며 대도독(大都督) 으로서의 고민하는 모습은 분명 사람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다. 그의 얼굴은 조조나 공명에게서 보는 감춰진 또 하나의 얼굴을 갖고 있지는 않다. 흑학(黑學)이라 할까, 검은 뱃심 같은 것도 감추지를 않았던 한 나라의 대 도독이었던 주유. 그는 또한 미남이었다. 달로 치면 보름달이면 수이 기울기나 하지만 한참 차오르는 열사흘 달 같다고나 할까.

조조가 백만대군을 이끌고, 적벽에 진을 치고 동오를 쳐내려왔을 때 오나라의 장중에서는 주전론자와 반전론자들의 의견이 분분하고 손권이 번민에 빠졌을 때 주유는 노숙의 안내를 받아 공명을 만나게 된다. 주유의 인생역정에서 공명을 만나지 말았어야 했을 것이건만 공명과의 만남이야말로 주유에겐 절대적 운명의 만남이 되고 말았다. 공명은 자신의 속뜻과는 전혀 달리 주유더러 조조한테 항복하는게 동오가 살길이라고 간곡히 권한다. 그러면서 조식(趙植)의 시(詩) 동작대부(銅雀臺賦)를 왜곡하여 이교(二喬)를 이교(二橋)로 고쳐 외우면서 조조가 이교(二喬)를 취하여 만년을 즐기겠다고 하여 주유를 격동시킨다.

강동의 천하절색 이교(二喬) 중, 대교(大喬)는 손책의 아내이고, 소교(小喬)는 주유 자신의 아내가 아니던가. 주유가 그의 아내 소교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삼국지를 읽어 본 이는 누구나 안다. 누구라도 자기의 아내를 뺏겠다고 했을 때 분노하지 않을 이가 없을 것이다. "혀가 칼날같이 예리해도 내 마음 변치 않소"라며 주유는 조조를 치고자 출전의 결의를 다진다.

주유는 음율(音律)에도 능했다. 주유의 '장하음'을 영상으로 몇 차례 들은 적이 있다. 장하음은 슬프고 무언가 사무치는 그리움 같은 것이 녹아 있었다. 무거운 듯한 거문고 탄주(歎奏)로서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 중'홍수'를 들을 때의 심정과 같다고나 할까.

군인이 전장에 나온 이상 시체를 말가죽에 싸 가지고 돌아가게 되면 그 이상의 영광이 어디 있으랴라며 싸운 그는 그 유명한 적벽대전의 승자가 된다. 독화살을 맞은 상처는 노기를 띠면 더치기 쉬운 법, 조자룡에게 남군성을 빼앗기고 형주성을 장비에게, 영양성은 관우에게 빼앗기며 '앗, 나는 누구를 위해 싸웠단 말인가!"라며 탄식하는 주유. 독화살은 조조의 군사에게 맞았지만 공명의 군사로부터 노기충천하여 붉게 피를 토하며 그 자리에서 쓰러진다. 주유는 백만 대군의 조조에게 이기고 실리에선 공명에게 졌다.

주유가 달릴 때 공명은 날고 있었으니 이것이 바로 주유의 죽음의 원인이었다. 주유가 인간적이라면 공명은 신격이었다. 주유는 죽기 전에 그렇게 사랑하는 아내 소교의 품에서 지은 장하음을 탄주하며 "하늘이여 이미 주유를 내셨으면 왜 제갈량을 내셨나이까"하는 탄식의 말을 유언으로 숨을 거둔다.

나는 오늘 1800여년 전 주유의 죽음을 조상(弔喪)하노니. 아직도 피가 뜨거운 그대 젊은 아내 천하절색인 소교와 나누어야 할 정분 태산같이 쌓아 두고, 무엇이 그리도 바빠서 먼 길을 홀연히 떠나시는고. 오늘도 장강에 배를 띄우고 시인은 시를 짓고 소리꾼은 적벽에서 격돌하는 대목을 우조, 계면조로 서슬좋게 적벽가로 풀어놓는다. 그 소리 속에서 흉중(胸中)에 벗을 두고 주유의 '장하음' 탄식을 나 혼자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