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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인물]조조

2005-12-29     경상일보
 
냉혹함과 빼어난 지략으로 난세 헤쳐간 '간웅'



태산을 감추고도 겉보기에는 평범하고, 검은 뱃속에는 하늘을 삼킬 수 있는 야망을 지니고서도 한량없이 태연한 외모를 가꾸는 사람. 얼굴은 종잇장처럼 얇게 태어났어도 마음은 뻔뻔한 철판같이 두껍고 컴컴한 복심(腹心)을 키우고 감추는 인간학을 실천한 사람, 더 높이, 더 멀리 뛰면 뛸수록 그 이상을 향해 뛰고 싶은게 인간의 야망이다. 그리하여 점차 인간은 야망의 늪에 발목을 들이민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그게 난세를 살아갈 남아로서의 풍모가 아니겠는가. 군자는 풍성한 덕을 깊이 감추어 우선보기에는 어리석은 것 같아 보인다. 나라를 경영하는 전략에 있어서는 후흑학(厚黑學)의 달인이 되어야 함은 마땅한 일. 한량없고 태연한 외모 속에 칠흑 같은 검은 복심을 감추고 상대는 오히려 그 무엇인가에 끌려서 손아귀에 들어오게 하고 마는 사람, 바로 그 달인이 조조다.

조조는 사실상 유비의 영웅됨을 항상 꺼렸다. 나르는 것과 헤엄치는 것은 거물을 치든 주살을 쏘아 떨어뜨릴 수 있으나, 용에 이르면 그것은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에 오른다고 하니 그 실체는 가늠하기 어렵다. 조조는 유비를 만나고서 전혀 잡히는 데가 없어 용이 되어 오를까 항상 꺼렸다. 그리하여 조조가 흑심을 갖고 영웅론을 빙자하여 유비의 마음을 떠보려했던 것이다.

그의 고향 안휘성(安徽省) 박주시에는 조조의 유일한 친필 시비가 있었다. 그의 시는 내용이 풍부하고, 서(書)예술의 풍격은 처량하고 비장하며, 산문은 성숙하고 노련하다고 해설을 들려주었다. 그의 시는 건안문학 독특한 시풍을 개척하였을 뿐만 아니라, 후세의 문학에도 많은 영향력을 미쳤다. 기세가 웅장하고 힘이 넘쳐 건안 시인들 중에서 그와 필적할 만한 시인이 없었다고 평가한다. 노신은 조조를 일러 문장개혁의 선구자라 평했다. 그는 영웅이기 이전에 역사상 뛰어난 문학가이다. 그의 시는 동한말의 실록이며 시사(詩史)라 일컬어진다.

박주시 근교에는 조조의 조부 조등, 아버지 조숭 등 선대 묘소들이 남쪽 교외에 위치하고 있었다. 누구의 묘인지 정확한 명기가 없어 이것이 누구의 묘일 것이라고 추측만이 가능할 뿐이라고 했다. 자신의 묘가 파헤쳐질까를 두려워한 나머지 72개의 묘를 만들어 놓은 것과 같은 이유가 아닐까.

그는 잔혹하고도 냉혹했다.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지는 못하고 많은 사람을 살상하고 말았다. 그러나 포악하거나 무정하지는 않았다. 그는 영웅적인 기개로 전쟁을 거듭하여 활거세력을 평정하여 난세를 바로 잡으려 했으며 역사적 조류에 순응하는 백성들의 요구에 부합하는 정책을 폈다.

조조는 분명 삼국지 인물 가운데 제일 뛰어난 영웅임에 틀림없다. 그는 분명 지용을 겸한 군사 전략가이며 지휘관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필요하면 쓰고 필요치 않으면 가차없이 처당하는 비정한 지도자였다. 그는 분명 난세의 간웅이었다. 그의 문치무공은 역사상 찬란한 광채를 발하였으며 후흑학의 경지 끝에 이르렀다. 그러나 우리는 조조의 영웅됨을 기리기보다는 인간 조조의 잔인함을 회자한다. 지금은 분명 영웅의 시대가 아닌 인간의 시대다. 말이 무성하여 앞이 보이지 않는 시대는 가고, 인권과 감정을 소중히 여기는 새해가 열리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글 한분옥 수필가 그림 박종민 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