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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함께 걷는다]욕망·집착 초탈한 '반야심경'의 세계를 보다

2006-01-04     경상일보
 
조성기씨의 단편소설 '통도사 가는 길'의 주요 배경인 밀양 삼랑진과 양산 물금은 가까우면서도 이질적인 고장이다. 둘 다 부산을 생활권으로 하고 있지만 정작 두 지역을 오가는 대중교통 수단은 기차밖에 없다. 무궁화호 기차로 10여분이면 충분하지만 기차가 드물게 운행돼 실지로는 멀게만 느껴진다.

심지어 삼랑진과 가장 가까운 도시인 밀양에서도 양산으로 바로 가는 버스는 없다. 기차 시간을 제 때 맞추지 못하면 꼼짝없이 1~3시간은 갇혀 있어야 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가 없을 때 느끼는 낭패감과 한편에서 스멀거리는 해방감, 시시때때로 버스가 다니는 대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색다른 감정을 삼랑진에서 맛본다.

'통도사 가는 길'의 주인공(그)은 어느날 무작정 서울에서 양산 통도사로 향한다. 여행을 떠나기 전 그는 한 여자와 헤어진 상태이다. 그에게 헤어짐은 '어두운 혁명'이었다.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오는 버스 안에서 그는 '없음(無)'이 주제인 '반야심경'의 구절들을 줄곧 떠올린다.

그는 대구의 한 여관방에서 뜬 눈으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삼랑진으로 가는 기차에 오른다. 막상 삼랑진에 도착했으나 양산으로 가는 버스가 없다. 일단 물금으로 가야한다는 택시기사의 말에 통근기차를 타고 우연히 '물금'(勿禁)이란 마을, '금지하는 것이 없는 공간'으로 들어간다.

삼랑진은 소읍(小邑)이다. 일제식 주택과 건물들이 삼랑진역 앞에 모여 있다. 몇년전 영화 '친구'의 곽경택 감독은 이곳에서 영화 '똥개'를 촬영했다. 비루하지만 순수한 인생이 살기에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는 평온한 마을이다. 중학교 사회 교과서에 나오는 '양수발전소'와 딸기, 복숭아 등의 재배지로 잘 알려져 있다.

삼랑진역은 소설에서 주인공 어머니의 인생이 무너지기 시작한 공간이다. 교원노조 운동을 주도한 주인공의 아버지는 삼랑진역에서 아내와 마지막 이별을 하고, 서울 서대문형무소로 가는 기차를 탄다. 이후 가족의 생활을 책임져야 했던 어머니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개찰구 앞, 참기름과 고춧가루 등 양념거리와 심지어 '턴테이블'까지 바리바리 짐으로 꾸려 아들 내외를 전송하는 촌로의 거친 얼굴에서 주인공 어머니의 표정을 읽는다. 그 표정에서 서글픔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별 앞에 선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를 슬쩍 엿본다.

삼랑진에서 물금으로 가는 기찻길 옆으로는 낙동강이 흐른다. 삼랑진이라는 지명은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세 줄기의 강이 부딪쳐 물결이 일렁인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서산으로 반쯤 기운 석양은 강물 위에서 허물어진다. 물결따라 흐물거리면서 조금씩 빛을 잃어간다. 허리를 숙인 갈대들은 물금에 도착할 때까지 빠르게 뒷걸음질 친다.

주인공은 물금에서 '무한한 자유의 공간으로 내던져진' 기분을 느낀다. 금지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한자 이름 때문이다. 윤리와 도덕, 종교 등 복잡한 족쇄에 얽매였던 한 인간은 이곳에서 무한한 해방감을 느낀다. 그는 헤어지기 전 여자가 안아달라고 했을 때 옷 하나 벗기지 못했다. 중요한 순간에 '관음'(觀音)이 아닌 '청음'(聽音)한 탓이다. 그는 그녀에 대해 원래 물금의 상태에 있다가 윤리와 종교의 뒤편으로 숨어버린 자신을 발견한다.

신년 연휴 기간동안 통도사를 찾았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절의 산책로는 정갈하다. 가지런히 빗질하고 쪽진 머리처럼 단아한 길은 절 입구를 지나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까지 이어진다.

일주문에 들어서자 극락보전에서 목탁소리와 정초기도를 올리는 신도들의 독경소리가 들려온다. 얼음 밑을 흐르는 계곡물 소리와 바람에 서걱이는 노송들의 솔잎 소리가 한데 구분없이 귓바퀴를 맴돈다. 통도사의 대표 건축물인 대웅전은 이름이 4개다. 동쪽에는 대웅전, 서쪽에는 대방광전, 남쪽에는 금강계단, 북쪽에는 적멸보궁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금강계단의 글씨는 일주문과 마찬가지로 흥선 대원군 이하응이 썼다. 그 흔한 불상도 없다. 대신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건물 뒷면에 안치돼 있다.

주인공은 텅빈 불단을 보고는 가부좌 자세로 내려앉고 만다. 허공 속으로 사라진 부처. 서울에서 내려오면서 떠올렸던 '반야심경'의 주제인 '없음'이 눈 앞에서 실현된 것이다. 그는 전율을 느낀다. 그녀의 존재와 그는 허공 속으로 빨려들어 간다. 모든 형상과 관념은 사라지고, 텅빈 삼랑진역 플랫폼에 서 있는 어머니만 남는다. 물질도 없고, 감각도 없고, 몸과 마음도 없고, 늙음과 죽음도 없고, 괴로움도 없고, 일체의 걸림도 없는 '반야심경'의 세계에서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저녁 어스름에 떠밀려 산문 밖으로 종종걸음치는 사람들의 무게가 한결 가벼워 보인다.


#통도사는


사찰 기행은 자칫 단조로울 수 있지만 목적을 갖고 가면 둘러볼 것이 많다. 통도사는 연중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으며, 성보박물관에서는 불교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통도사는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신라 선덕여왕 15년(646년)에 창건한 고찰인 만큼 유물이 많다. 국보와 보물, 각종 문화재 자료가 100여개에 이른다.

통도사의 대웅전과 금강계단은 국보 290호로 지정돼 있다. 통도사 동종은 보물 11-6호이다. 이밖에 은입사동제향로(보물 334호), 봉발탑(보물 471호), 영산전팔상도(보물 1041호) 등 스무개 가까운 유물이 산재해 있다.

통도사 입구에서 일주문까지 1㎞ 가량 나있는 도보길은 아름드리 고송이 터널을 이루면서 사시사철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산책 코스로 유명하다. 길 옆을 흐르는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걷는 운치를 즐길 수 있다. 통도사를 거쳐 영축산(1059곒)을 등산하는 등산객들도 연중 꾸준하다.

울산에서는 언양을 거쳐 양산 방면으로 차를 타고 가면 통도사 표지판이 나온다. 40~50여분 걸린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언양에서 양산을 경유하는 부산행 완행버스를 타고 가다가 신평에서 내리면 된다.

#주말날씨는 어떨까요
올 겨울은 유난히 눈비가 없다. 최근 6년간 최저치의 비가 오면서 영남지방은 '목타는' 겨울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한달간 울산은 1.1㎜, 부산은 3.0㎜, 마산은 0.7㎜, 진주는 0.6㎜, 합천은 0.1㎜의 비가 오는데 그쳤다. 바싹 타들어가는 농심(農心)과 시민들의 마음에도 불구하고 오는 주말 역시 눈비 소식은 없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번 주말 영남지방은 고기압의 영향을 받아 대체로 맑겠으며, 기온은 평년보다 다소 낮겠다. 토요일은 영하 3~영상 5℃, 일요일은 영하 2~영상 6℃의 기온 분포를 보이겠다. 그러나 야외활동지수는 이틀간 80으로 예상돼 야외활동하기에 큰 지장은 없겠다.


글·사진=서대현기자 sdh@ksilbo.aykt6.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