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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인물]서원직의 모친

2006-01-05     경상일보
 
 
 
죽음으로써 밝음을 가르친 의로운 모정

새해 아침 동해 일출을 본다. 새해는 빛이다. 지상의 어둠 모두 사르고 하늘과 바다 사이에 둥둥둥 빛보라를 일으키는 일출을 누가 맨 먼저 가슴으로 받아서 소원을 빌었는가.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이 새해 첫 날 찬란한 해를 치마폭에 담아 안으며 기도하는 아름다운 풍정은 예나 이제나 한결같은 우리 어머니들의 거룩한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랴. 모성애(母性愛)는 거룩한 본능이다. 모성애는 거룩하다 못해 역사의 바퀴를 굴리는 원초적 에너지다. 자식 낳아 기르는 어머니 되고 어느 날 하루같이 펄펄 끓는 가마솥을 이고 가지 않은 이, 어느 누구 있으랴.

모성애의 희생과 헌신 없이 인류의 역사가 오늘에까지 이어져 왔을까. 모성본능은 자식에겐 축복이면서 어머니에겐 또한 형벌이다. 누구라도 어머니의 자식이었다가 또 자식의 어머니가 되는 것이 인생의 길이지만.

서서(徐庶) 원직은 효자다. 서서는 영천(穎川) 사람으로 그는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효자다. 서서가 신야에서 유비를 돕고 있을 때 조조의 진영에서 서서를 꾀어가기 위한 수단으로 서서의 노모를 모셔와 극진히 대접했다. 조조는 부하에게 지필묵을 준비하게 하고서 노모에게 서서가 돌아오게 편지 쓸 것을 강요하였다. 서서의 노모는 "역적은 바로 네놈이란 것을 세상이 다 아는 것을, 나더러 역적인 네놈을 도우라니" 하며 서서의 노모는 조조의 면상을 향해 벼루를 던진다. 그러자 조조는 무사들에게 서서의 노모를 끌어내어 죽이라고 소리쳤다. 서서의 노모를 살려 붙들어 두면 서서는 유비를 적극적으로 돕지는 못할 것이라고 정욱이 만류하였다.

이후 정욱은 서서의 노모를 극진히 모시며 마치 친자식이 어머니를 대하듯 정성을 쏟았다. 좋은 음식을 보내며 편지도 아울러 보냈다. 서서의 노모는 극진히 대해주는 정욱의 편지에 답신을 보냈다. 노모의 편지를 보고 정욱은 필체를 본떠 편지를 써서 신야의 서서에게 보냈다. -조조가 나를 끌고 와서 네가 유현덕을 돕는다고 나를 옥에 가두었으니 이 편지를 받는 즉시 이 어미를 위해 지체 말고 달려오라. 이 어미는 너의 효심을 믿는다.-는 내용이었다.

서서는 노모의 편지를 받고 통곡하며 유비에게서 떠나갈 것을 아뢰었다. 유비는 서서의 효심에 찬 말을 듣고 같이 눈물을 흘리며 부모자식간의 정은 천륜이니 어찌 그 천륜을 끊어라 하겠소라며 서서를 보냈다. "융중에 가면 훌륭한 선비가 한분 계신데 그 분을 꼭 찾으십시오. 그 분은 불러서 올 사람이 아니고 공께서 꼭 찾아가서 뵈시오. 저를 그분과 비교하는 자체가 그 분을 욕되게 하는 것이지요. 그는 하늘과 땅을 다스릴 수 있는 인물로 현세에 있어 가장 높은 선비입니다." 하며 제갈공명을 천거하고 떠나갔다.

그렇도록 밤을 도와 달려가서 서서는 어머니를 불렀다. 갑작스런 서서의 부름에 놀란 노모는 여길 웬일이냐고 반문했다. 서서는 어머니의 편지를 내보였다. -예로부터 충과 효를 동시에 할 수는 없는 일. 황실의 후손이며 백성들로부터 존경받는 유현덕을 네가 주인으로 모시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더니 위조된 편지를 받고, 진위를 판단하지도 못하고 밝은 주인을 버리고 역적 조조 놈에게 오다니 정말 분통이 터질 일이로구나. 너 같은 못난 놈을 낳은 나는 어미로서 자격이 없다.-고 하며 즉시 대들보에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진정 효가 무엇이며 진정한 모성애가 무엇인가를, 우리를 깨닫게 한다. 서서 어머니의 죽음은 한줌 흙이 되었으나 그 어머니의 하늘을 찌르는 의기(義氣)는 삼국지가 읽히는 날까지 뜨거운 숨결로 이어질 것이다. 새해 아침 문을 열고나서니 뜰에 붉은 매화가지에 언제인듯 총총히 맺힌 꽃눈이 필 날을 기다리고 있다.


글 한분옥 수필가 그림 박종민 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