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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축제]호미곶 한민족해맞이축전

2006-01-25     경상일보
 
역사성에 더한 이벤트 해맞이 백미


날마다 뜨고 지는 해이건만 새해 첫 해에는 각별한 뜻을 담고 싶은 게 우리네 정서다. 그래서 해마다 첫 해오름에 인파가 넘쳐나는가 보다. 그건 온전히 지난 2000년의 밀레니엄 축제 탓일 게다. 그 후 해마다 묵은 해와 새해가 교차하는 마지막 날 밤과 새 새벽에는 2년짜리 하룻밤을 보내고 맞기 위한 여러 행사와 사람들로 전국 곳곳이 물결친다.

어느 해맞이축제나 2년짜리 하룻밤을 새는 관광객들을 위해 그렇고 그런 행사들 일색이다. '호미곶한민족해맞이축전'도 엇비슷하지만 올해는 눈을 확 사로잡는 두 가지 프로그램으로 전국적인 관심을 모았다. 최고의 해맞이 축제로 만들려는 포항시의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올해 축제에는 지난해보다 5만이 더 많은 무려 25만명이 모였단다. 축제는 12월 31일 오후부터 1월 1일 새벽 1시반까지의 1부 '전야축제'와 1월 1일 오전 6시반부터 9시반까지의 2부 '해맞이축제'로 나누어 치러졌다.

전야축제는 해병 의장대 시범공연으로 시작되어 7080콘서트와 인기가수공연, 전통민요공연, 재즈댄스공연, 안데스민속음악공연, 평양예술단공연 등이 차례로 이어진 뒤 새해가 시작되는 시각에 불꽃놀이와 레이져쇼가 밤하늘을 수놓았다. 이런 프로그램은 나라안의 여타 해맞이축제에서도 볼 수 있는 변별성 없는 것들이다.

2부로 열린 해맞이축제는 해맞이 광장에 안치되어 있는 네 개 '영원의 불' 점화로부터 시작되었다. 지난 2000년 새천년에 만들어진 '영원의 불'은 당시 대통령특별자문기구인 '새천년준비위원회'가 자문을 하고 과학기술부 '선샤인(Sun-Shine)21팀'이 개발한 채화장비로 채화한 서해안 변산반도의 '20세기 마지막 불씨'와 동해안 호미곶의 '새천년 시작의 불씨', 남태평양 피지의 '지구의 불씨', 독도의 '즈믄해의 불씨'를 모아 놓은 것이다.

조금씩 여명의 빛살이 검은 기운을 내몰면서 새해 첫 해오름 시각이 점점 다가온다. 새해를 새롭게 여는 희망의 울림 콘서트가 진행되는 도중 수평선 위 구름을 뚫고 해가 솟았다. 호미곶의 해뜨는 시각은 7시 32분 22초이지만 구름 때문에 조금 늦게 해를 맞았다. 숨을 죽이며 새해 첫 해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일제히 탄성을 내지른다. 호미곶 해돋이의 백미는 광장과 바다 두 군데에 세워진 '상생의 손' 엄지와 검지 사이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는 것. 마치 손가락으로 해를 잡고 있는 것만 같다. 묵은 해의 갈등을 넘어 화해와 통합의 새해로 나아가라는, 서로가 함께 하는 상생의 두 손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깊은 울림이 모두의 가슴 속에 쌓이는 순간이다.

축제의 하일라이트는 해맞이 뒤에 치러진 초대형 태극기 펼치기와 1만명분 떡국. 2002년 월드컵 때 붉은 악마가 만든 태극기의 두 배인 가로 80m, 세로 53m, 무게 2톤, 면적이 무려 1300평인 태극기를 참가자들이 펼쳐들고 오는 6월 독일월드컵에서 2002년의 영광을 재현하고, 겨레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면서 '호미곶의 정기로 대한민국에 영광을!'이란 구호를 목청껏 외쳤다. 이 날 펼쳐진 태극기는 지난해 12월 27일 오전 10시반에 아리랑위성이 686Km 상공에서 촬영하여 사전에 전국 언론에 소개되는 등 큰 화제를 모았다. 해맞이 광장에 대형 무쇠솥을 내걸고 대형 노를 저어가며 1만명분의 떡국을 끓여 나누어 준 것도 관광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두 가지 모두 일출명소에 걸맞는 행사였다.

이처럼 호미곶 일출행사가 성공을 거둔 것은 순전히 호미곶이 갖고 있는 역사성에다 포항시가 만들어논 1만3천여평의 해맞이광장 때문일 게다.

호미곶 해돋이를 나라의 으뜸으로 꼽은 것은 600여년전 조선 때부터의 일이다. '동국여지승람'에 '영일현을 해맞이의 고장'으로 기록하고 "구름과 물이 한 빛이라, 날이 샐 무렵 선홍빛 태양이 용솟음치며 떠오름에 고을 이름(영일, 迎日)과 같다"고 설명하고 있다. 호미곶이란 이름에 대해서는 조선 때 풍수지리학자 남사고가 '산수비경'에서 "한반도는 대륙을 향하여 포효하는 호랑이 형상인데 백두산은 호랑이 코에, 장기곶은 호랑이 꼬리에 해당된다"고 적은 것에서부터 연유한다. 김정호는 호미곶과 울진 죽변곶 가운데 동해로 더 튀어나온 곳을 재려고 무려 일곱 번이나 오간 끝에 대동여지도에 호미곶을 더 튀어나오게 그려놓았다. 더 앞 선 시대의 것으로는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연오랑 세오녀'의 설화가 있다. 덤으로 세월의 향기와 호국의 얼이 서린 경주 대왕암에서부터 감포-양포-구룡포-호미곶으로 이어지는 100리 해안길도 있으니, 인파가 몰리지 않으면 도리어 이상할 터.

그 역사성과 장소의 상징성 외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프로그램 개발이 관광객을 불러모으는 요인이 되고 있다. 1만3천평의 광장을 조성한 뒤에도 등대박물관과 영원의 불, 상생의 손, 연오랑 세오녀 동상 등을 만들어 상승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또 친환경 관광개발계획을 세우고 추진중이라고 한다.

육당 최남선은 '조선 10경'에서 호미곶의 해돋이를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출이며, 조선의 뜻을 새롭게 하는 일출'이라고 극찬하였다. "이 어두움 이 위치를 더 견뎌내지 못할세라/ 만물이 고개 들어 동해 동해 바라볼 제/ 백령(百靈)이 불을 물고 홍일륜(紅日輪)을 떠받들어/ 나날이 조선 뜻을 새롭힐사 호미일출(虎尾日出)"이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