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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모도들 따사로히 가난하니

2006-03-02     경상일보
 
백석 시인의 삼천포

1930년대 남해안 기행 연작시 쓴 백석 정겨운 남도풍경과

순박한 장터 사람들 향토색 짙은 시어활용 따뜻하게 그려내



겨우내 깡깡 얼었던 땅이 봄볕에 숨을 죽인다. 봄기운에 녹아 물기를 머금은 땅은 푹신하니 누긋하다. 농부는 볕에 내놓은 쟁기며 가래 등 농기구를 주섬주섬 챙긴다. 양팔 벌리면 끝과 끝이 닿을 것 같은 좁은 농로 위로 경운기가 털털 달린다. 여기저기서 움이 트는지 봄을 앞둔 삼천포 땅은 온 몸이 근질근질하다.

경상남도 삼천포는 통영과 남해의 중간에 있다. 통영과 남해 사람들은 삼천포를 거쳐 서로 오갔다. 더러는 삼천포에서 전을 펼치기도 했다. 곧 시장이 형성되고, 통영과 남해는 물론 진주 사람까지 장을 찾았다. 갓 잡아올린 해산물과 내륙에서 이고 온 농산물이 난전을 이루고, 질박한 경상도 사투리가 목청높여 오가는 풍경은 삼천포를 삼천포 답게 했다. 그 풍경은 1995년 삼천포시와 사천군이 통합, 사천시로 이름이 바뀐 지금도 여전하다.

1930년대 중반 시인 백석(1912~?)은 순박하고 서정적인 우리말로 '삼천포'라는 시를 썼다. 당시 그는 남해안 지역을 여행중이었다. 창원, 통영, 고성을 거쳐 삼천포에 이르는 여행이었다. 짐 내려놓고 담배 한 대 피우고 싶은 창원, 곶감과 포목이 팔리고 문둥이가 주막집 앞에서 품바타령 하는 통영장, 다홍치마 노란 저고리 입은 색시들이 웃고 살 것만 같은 고성을 지나 볕이 담뿍 따뜻한 삼천포를 둘러봤다.

그는 이 여행에서 쓴 시를 '남행시초' 연작으로 엮어 1936년 3월 한달간 조선일보에 4회 연재했다. 일제의 수탈에 피폐해진 농촌을 토로하는 대신 차창 밖으로 보이는 정겨운 남도 풍경과 왁자지껄한 장터 모습, 때 되면 밭을 갈고 바다에 나가는 사람들을 아름다운 우리말로 표현했다.

'졸레졸레 도야지 새끼들이 간다/ 귀밑이 재릿재릿하니 볕이 담복 따사로운 거리다// 잿더미에 까치 오르고 아이 오르고 아지랑이 오르고// 해바라기하기 좋은 볏곡간 마당에/ 볏짚같이 누우런 사람들이 둘러서서/ 어느 눈 오신 날 눈을 치고 생긴 듯한 말다툼 소리도 누우러니// 소는 기르매 지고 조은다// 아, 모도들 따사로히 가난하니' ('삼천포-남행시초4' 전문)



삼천포에서 자란 시인 박재삼(1933~1997)도 백석과 비슷한 서정으로 시를 썼다. 박재삼은 삼천포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삼천포여자중학교 사환으로 일했다. 이 곳에서 교사였던 시조시인 김상옥을 만나 시를 배웠다. 신산스런 삶의 궤적이 비슷한 탓이었을까. 대다수 사람들에게 습관처럼 친근했던 가난의 모습을 향토색 짙은 시어로 표현한 두 시인의 시는 참 많이 닮아 있다.

삼천포항 노산공원에는 박재삼 시인의 시비가 있다. 2001년 여름에 세워졌다. 공원 앞에는 시인이 어린 시절을 보낸 집이 있다. 원래 집은 헐렸고, 그 자리에는 대신 김밥집이 들어서 있다. 2004년 공원 앞은 '박재삼 거리'로 명명됐다. 시인은 '흥부의 사립문을 통하여서 골목을 빠져서 꿈꾸는 숨결들이 바다로 간다'고 노래했지만 여관과 모텔이 잔뜩 들어선 거리는 그의 시만큼 문학적이지 않다.

노산공원 끝에 위치한 정자에 서면 한려수도가 탁 트인 시야 안으로 들어온다. 멀리 삼천포와 남해를 잇는 창선대교 아래로 어선 두어척이 한가롭게 바다 위를 오가고, 인근 섬을 오가는 유람선은 비수기 승객을 기다리다 지쳐 볕을 쬐며 존다. 한 낮이 무료한 아이들은 포구에 방치된 폐선을 놀이터 삼아 논다. 할아버지가 탔고, 아버지가 탔던 배 위에서 그들의 유년은 영글고 있다.

반면 싱싱한 횟거리와 쥐포, 멸치, 생선젓을 파는 항구 옆 서부시장은 활기가 넘친다. 장이 열리면 낫대들고(장이 열리자마자 대들 듯이 나아가 구경하는) 나서는 사람들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사이소, 깎아주소 흥정 속에 하루 해가 저문다. 시장을 나와 통영으로 가는 국도변 마을은 해질녁에도 아랑곳 없이 농사 준비에 한창이다. 잠시 머물고 싶은 시골 풍경 너머로 어슴프레 남해바다가 보인다. 파도에 밀려 따사로운 봄이 오고 있다.

◇ 시인 백석

1912년 평안북도 정주군에서 태어났다. 오산소학교와 오산고보, 도쿄 아오야마(靑山)학원 영어과 사범과를 졸업했다. 1934년 조선일보사 출판부에 일하면서 계열 잡지 '여성'의 편집을 맡았다. 1935년 시 '정주성'을 조선일보에 발표하며 등단했다. 1936년 1월 시집 '사슴'을 200부 한정판으로 발간했다. 같은 해 4월 함경남도 영생고보 영사 교사로 옮겨갔다. 이 때 기생 김진향(김자야)을 만났다. 1938년 서울로 돌아와 조선일보에 재입사했다. 곧 그만두고 만주로 떠나 번역, 측량 보조원, 중국인 토지 소작인 생활을 하며 생계유지를 했다. 해방과 더불어 귀국, 고향 정주에 정착했다. 북한에서 시인으로, 번역가로, 김일성대학 영어과 강사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63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나 확실치는 않다. 시와 산문은 '백석전집'(창작과 비평사, 1987), '백석시선집'(학영사, 1995), '여우난족골'(솔, 1996년) 등으로 묶여 국내에서 출간됐다.


◇ 삼천포 주변 가볼만 한 곳

남해고속도로 사천 인터체인지를 빠져 나와 20여분 직진하면 삼천포항이다. 얼핏 봐도 100여척이 넘는 어선들이 잇대어 정박해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노산공원 전망대에서는 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다. 박재삼 시인의 시비가 공원 안에 있다. 인근 서부시장(삼천포어시장)에서는 회와 건어물을 맛볼 수 있다.

사천 와룡산 백천사도 가볼만 하다. 백천사는 거대한 와불로 알려져 있다. 항구에서 사천 인터체인지 방향으로 구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팻말이 보인다. 절까지 10분 정도 올라가는 시골길은 드라이브 코스로도 좋다. 이밖에 삼천포 실안해안도로도 드라이브 코스로 제격이다. 도로에서 바라보는 일몰이 장관이다.

삼천포항에서 창선·삼천포대교를 건너 남해를 둘러봐도 된다. 대교 아래로 대나무 발을 이용해 어업을 하는 죽방렴을 감상할 수 있다. 다리를 건너 물미 해안도로를 따라 독일마을, 해오름예술촌, 미조항, 상주해수욕장 등 남해의 명소가 이어져 있다.

055·830·4000(사천시 문화관광과)

055·860·3805(남해군 문화관광과)



글·사진=서대현기자 sdh@ksilbo.aykt6.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