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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행복하면 세상은 절로 아름답습니다

2006-06-21     경상일보
 
팔공산 자락 은해사 유서깊은 부속암자로 이름난 절
참나무와 느티나무 서로 붙어 자라는 '연리목' 눈길
백흥암-중암암-운부암 이어진 길 하루 나들이 적당




영화 속에나 있는 것인줄 알았는데 그런 나무가 있었다. 서로 종류가 다른 나무, 참나무 가지에 느티나무가 파고 들어 몸이 하나가 되고 말았다. 연리목(連理木)이라 한단다. 그 가지를 연리지(連理枝)라 한다는데. 영화 제목으로 다가왔을 때만 해도 무슨 소린가 했다. 상상 속에, 혹은 전설 속에 그런 나무가 있다고 하나보다 했더니. 경북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 은해사(銀海寺)에 그런 나무가 있었다. 일주문을 들어서 절집에 이르기까지 계곡을 끼고 걸어가는 길목에 사랑나무라는 간판을 단 연리목이 서 있다.

'100여년생 참나무와 느티나무가 서로 붙어 안고 자라고 있으니 연리지 중에 매우 희귀한 경우이다. 나라의 경사, 부모에 대한 효성, 부부의 애정 등을 상징하는 연리지는 삼국사기 및 고려사에도 귀하고 경사스러운 일로 여겨왔다. 연리지 아래에 촛불을 켜고 빌거나 왼편으로 돌면 아들을, 오른편으로 돌면 딸을 낳고, 사이가 좋은 부부가 손잡고 돌면 사랑의 묘약이 되어 화합한다는 구전이 있다'

간판에 적힌 글이다. 여러 사람이 어울려 은해사를 다녀온 뒤 자꾸만 연리지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부처님 오신날이 지나고 얼마 안됐으니 사람들이 붐비지는 않겠다 싶어 은해사를 다시 찾았다. 이상하게 좋은 날이었는지, 보화루를 지나고 대웅전을 향해 들어서는데 그렇게 평온할 수가 없었다. 넓은 마당에 내려앉은 한낮의 쨍한 햇살 마저도 부드러웠다. 크진 않지만 당당한 대웅전, 그 앞에 긴 세월을 견뎌왔을 크나큰 향나무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 밖에 두서없이 들어서 있는 법당과 요사채들은 이상스레 눈밖으로 나가 있었다.

향나무 아래 때마침 열린 그림그리기 대회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열심히 스케치를 하고 있었고 스님 한분이 아이들에게 정겨운 말을 건네고 있었다. 손을 모으고 인사를 했다. "차 한잔 하시겠어요" 고마웠다. 열어젖힌 방문으로 풍경소리가 제집처럼 들어왔다. 고단했던 일상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누구나 늙고 병들고 죽습니다. 왜?" 차를 우려내던 각래스님은 내 어깨 위에 내려앉은 피로를 읽은 모양이다.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답을 하신다. "지극정성으로 기도하십시요. 그럼 언제까지?" 또 자문자답하신다. 진짜 그게 궁금했다. 얼마나 하면 다 했다할까. "세상이 아름다워 보일 때까지." 그래 그러자. "내가 행복하면 세상은 절로 아름다워 보이는 법이죠" 스님이 마무리했다.

팔공산 자락에 자리한 은해사는 신라 41대 헌덕왕이 즉위한 다음해 809년에 창건됐다. 옛이름은 해안사(海眼寺)다. 절집은 지금보다 더 위쪽인 해안평에 자리하고 있었다. 해안사는 1545년 조선 인종 원년에 일어난 대화재로 모두 불타고 지금의 자리로 옮겨 건립하면서 은해사로 이름을 고쳤다.

절집 이름이 은빛 바다라니. 신라의 진표율사가 관견(觀見)이라는 시에서 '한 길 은색 세계가 마치 바다처럼 겹겹이 펼쳐져 있다'고 했다. 팔공산 자락에 불·보살·나한 등의 불보들이 마치 은빛 바다가 물결치듯 찬란했다는 뜻이다.

은해사는 사실 부속 암자로 인해 더 이름난 절이라고도 한다. 백연암, 운부암, 거조암, 중암암, 백흥암, 기기암, 묘봉암, 서운암이 은해사 등 뒤로 부채모양으로 펼쳐져 있는 암자들이다. 거조암이나 백흥암, 운부암이 그중에서도 품위 있는 고찰로 꼽힌다.

백흥암은 부처님오신날과 백중날을 제외하곤 문을 열지 않는다. 비구니 스님들의 수도도량이다. 비구니 스님들이 있는 절집이 으레 그렇듯이 정갈하기가 이를 데 없다. 은해사에서 산길로 3㎞ 거리다. 절집 문은 열려 있었고 스님들이 소박한 걸음걸이로 오가고 있었다. "스님, 들어가도 됩니까" "나는 모릅니다" 묵인으로 들렸다. 발걸음을 죽이며 조용히 들어섰다. 감탄사가 절로 터졌다. 단청은 이미 빛이 바래 고스란히 살을 드러낸 극락전. 그 주위를 싸고 있는 자그마한 법당과 요사채, 그리고 낮은 산이 어울려 한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극락전 내부는 화려한 수미단(보물 486호)으로 꾸며져 있다는데 들어가 볼 수 없어 아쉽다.

백흥암에서 다시 산길을 따라 1㎞를 더 가면 중암암에 이른다. 길이 잘 뚫려 있기는 하나 너무 가팔라서 타이어에서 타는 냄새가 날 정도다. 절집은 바위 사이로 난 작은 구멍을 지나가면 바위에 걸터앉아 있다. 절집은 볼품이 없으나 위치만큼은 절묘하다.

운부암으로 가려면 중암암에서 돌아나와 내려오다가 들리면 된다. 운부암은 가는 길로 이름나 있다. 계곡으로 따라 이어지는 길이 숲으로 덮여 있다. 운부암은 천하명당이라고 한다. 북의 마가. 남의 운부라고 새긴 돌이 절 입구에 서 있다. 멀리서 보는 풍경이 더 아름답다. 은해사도, 백흥암도, 운부암도 들어서는 누각의 이름이 모두 보화루다.

중암암에만 등산하는 사람들이 간혹 오갈 뿐 운부암도, 백흥암도 적막강산이다. 새소리, 물소리 뿐 아니라 숲속의 나무들이 숨쉬는 소리까지 들릴 것만 같다. 하루 나들이로는 더 없이 상쾌하다.


글·사진=정명숙기자 ulsan1@ksilbo.aykt6.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