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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곳곳 돌며 과거-현대 시간여행

2006-08-09     경상일보
 
광화문서 출발 덕수궁~인사동~청계천 두루 관광
공예품상가 '쌈지길'엔 별난 물건들에 휘둥그레
환상적 청계천 야경 즉석 물놀이 하루 피로 잊어




서울시티투어버스는 광화문 사거리 동화면세점 앞에서 출발한다. 우리처럼 아이들 방학을 맞아 지방에서 올라 온 가족들이 꽤 많다. 물론 외국인들도 여럿이다. 35인승 버스는 30분 간격으로 도심 곳곳 지정 정류장을 하루종일 순환한다. 저마다 다른 일정을 잡은 나들이객들은 자신이 원하는 곳에 내려 둘러본 뒤 다시 정류장으로 돌아와 투어버스를 타고 다음 관광지로 옮겨간다.

우리 가족 첫 코스는 덕수궁이다. 정문인 대한문으로 들어섰다. 너른 풀밭과 돌계단 위 기와건물은 방금 지나쳐온 거리풍경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땅값 비싼 일급지 빌딩숲 속에서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온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10여 채의 건물들은 간격이 제법 멀다. 다 둘러보려면 한 시간 정도는 걸린다. 궁궐지킴이의 해설은 그저그런 일정이 될 뻔한 덕수궁을 꽤 기억에 남는 관람지로 만든다. 중절모와 백구두 차림의 노신사의 이야기는 꽤 재미났다. 어린 연배의 관람객들을 깍듯하게 대하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환갑에 얻은 딸 덕혜옹주를 아끼는 마음에 고종이 집무실 옆에 옹주의 유치원을 둔 일화 등을 제법 감질나게 들려준다. 고종이 다과를 하거나 연회처로 사용했던 정관헌에도 직접 들어갈 수 있다. 빗장을 채워두어 밖에서 관람만 할 수 있었는데 이 달부터 주말마다 개방하게 됐단다. 앙부일귀(해시계)와 자격루(물시계)가 덕수궁 안에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관람이 끝난 뒤 정문 왼쪽골목으로 접어들었다. 드라마나 소설 속에 자주 나왔던 덕수궁 돌담길이다. 서울시립미술관, 정동극장, 난타극장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일방통행으로 차량이 간간이 이어지긴 하지만 자동차보다는 도보를 위한 거리에 초점을 맞춘 것이 확연하다. 마침 정오를 넘긴 점심시간이라 빌딩에서 쏟아져 나온 회사원들이 삼삼오오 돌담길을 거닐고 있었다.

전쟁기념관과 남산서울타워 등을 거친 뒤 인사동 거리에 도착했다. 전통공예품을 판매하는 상가가 500여m 정도 이어진다. 진열장마다 부채, 가방, 도자기, 묵주, 염색천, 수묵화 등이 넘친다. 국적 불명의 디자인이거나 마무리가 조잡한 물건도 사실 많았다. 기대가 높으면 실망도 크다는 것을 알고있는 터라 애써 여행지에 대한 환상을 키우지 않으려 한다. 그래야 '생각보다 별로'라거나 '볼 것이 없는'곳도 악평보다는 나름대로 괜찮은 인상을 품고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인사동도 그런 곳 중 한 곳이려니 했다. 나처럼 뜨내기 관광객에게는 옛스럽고 별난 물건을 한꺼번에 구경하는 재미도 만만치않으니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쌈지길'이라는 건물은 부족한 듯한 기대치를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시간이 넉넉하지못해 더 나은 경험을 놓치고 있다는 섭섭함마저 들 정도니 말이다.

쌈지길은 중간에 빈 공간을 둔 4층 높이의 ㅁ자 건물이다. 5평 규모의 점포 100여개가 꽉 들어찼다. 젊고 가능성 있는 수공예 작가들의 공방 겸 전시판매점이다. 각 점포마다 도자, 한지, 가죽, 은, 천 등으로 생필품과 예술품의 경계가 모호한 작품들이 선보이는 중이다. 실내규모는 엇비슷하지만 다양한 영역의 공예품을 취급하는지라 점포마다 색다른 인테리어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스프링 모양의 건물은 계단을 오르지 않고도 4층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매주 금요일마다 가운데 마당에서 공연도 진행된다. 두어 시간만 기다리면 재즈 콘서트를 감상할 수 있었지만 아쉽게도 저녁 일정때문에 함께 하지 못했다. 한 쪽 구석에선 입점 작가들이 차례로 진행하는 체험교실이 열리는 중이다.

예고도 없이 선 보인 두 남녀의 거리 퍼포먼스도 반갑기 그지없다. 한 갤러리의 전시를 홍보하려는 모양이다. 이해하기 어렵고, 아름답지도 않지만 너무나 진중해서 효과가 컸나보다. 구경꾼들을 골목 안 갤러리까지 끌고가는데 성공했으니 말이다.

청계천에 다다른 것은 밤 8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처음 시티투어를 탔던 광화문 정류장 맞은편이 청계천이다. 콘크리트 바닥에 부드러운 굴곡을 따라 물이 졸졸 흐른다. 가느다란 물줄기는 청계천이 시작되는 폭포수로 이어진다. 실개천이 모아져 청계천을 이룬 옛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듯하다. 미니 분수가는 이미 약속장소로 인기가 높다. 분수대 아래 갑자기 불어난 물길은 하얀 포말을 그리며 그대로 떨어진다. 바로 청계천이 시작되는 곳이다.

예상보다 폭이 넓고 유량도 많다. 개울을 따라 걸어 내려가니 빈 자리라곤 없다. 계단식 개울가는 발을 담그고 앉은 어른들 차지다. 아이들은 첨벙거리며 물 속에 뛰어든지 오래되어 보인다. 서울 구경 간다며 기대에 찼던 우리 아이들도 하루종일 걸어다니느라 지친 기색이더니 물 만난 고기마냥 다시 싱싱해졌다.

눈길을 끄는 구조물들이 즐비하다. 청계천 조각공원이라더니 그 말이 딱 맞다. 물길이 시작되는 직하분수 아래로 도룡뇽을 본 딴 구조물이 여러 마리 엎드려 있다. 솜뭉치로 만든 물고기떼는 청계천 위 하늘을 마치 물 속인 양 가로지른다. 오랑우탄 인형도 인기다. 옷이며 모자며 한쪽 다리를 오무리고 앉은 모양새가 실제 사람과 흡사해서 지나는 이들을 놀래키곤 한다.교량 아래 가장자리에는 복개천 철거과정에서 발견된 당초문양의 옛 석조물이 그대로 사용되기도 했다.

청계천 주변 네온사인이 더 휘황찬란해진다. 밤이 깊어도 열대야를 피해 쏟아지듯 불어난 사람들은 줄어들 기미가 없다.


#서울시티투어버스

서울시티투어버스는 요일별로 코스가 달라지는 울산시티버스와 달리 매일 일정한 순환 코스를 달린다. 도심순환, 고궁, 청계천, 야간코스 등 모두 4가지로 나누어져 있다. ▶도심순화코스는 광화문을 출발해 용산역, 국립박물관, 명동, 국립국장, 대학로 등 27개 정류장을 30분 간격으로 순환한다. ▶고궁코스는 창덕궁, 경복궁을 비롯해 청와대를 순환한다. 도심순환코스와 겹치는 정류장에서 환승할 수 있다. ▶오후 7시이후 2차례 출발하는 야경코스는 광화문~덕수궁~남산~청계광장을 2시간여 순환한다. ▶2층 버스가 투입돼 인기가 높은 청계천 투어는 하루 5차례 운행되며 인터넷 예약으로만 접수한다. 월요일 휴무. 탑승구입비 1만~8천원. 02·777·6090. www.visitseoul.net


글·사진=홍영진 객원기자 thinpizza@ksilbo.aykt6.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