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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나무 에서 시냇물 소리가 들려요" - 아홉산 숲이야기

2006-10-11     경상일보
 
기장군 아홉산 숲체험


이번 주말은 아이들 수업이 없다. 교실을 벗어나 들판, 유적지, 공연장 등 다양한 현장 속으로 체험여행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추석 연휴 뒤끝이라 집안 일도 밀렸고, 다잡아야 할 업무가 태산이지만 아이들 교육 또한 소홀히 할수야 있나.

가까운 곳으로 하루 일정 코스를 잡는다면 부담도 덜고, 아이들 과제물도 어렵지 않게 챙길 수 있을 것 같다.

어디가 좋을까. 가을 정취도 느끼고, 숲 체험도 하고, 아울러 고즈넉한 가을 산사까지 두루 돌아볼 수 있는 일석삼조의 여행지가 멀지않은 곳에 있다.

'아홉산 숲'이 있고 동해의 강렬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해동용궁사, 나즈막한 산을 끼고 있는 장안사가 있는 부산시 기장군은 가볍게 떠났지만 가을의 풍성함으로 한껏 얻을 수 있다.



일제시대 숲을 지키기 위해 문중 어른들이 벌인 일화가 재미있다. 일본인 관리들이 적송을 베려할 때마다 유기들을 일부러 눈에 띄는 곳에 숨겼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유기들을 꺼내가면 더 소리내어 통곡하고, 마당에 드러눕기도 했단다. 유기만으로도 흡족해진 관리들이 더이상 산을 오르지 않고 그대로 돌아가기를 바란 것이다.

그렇게 지켜온 숲이 몇년 전부터 생채기가 나기 시작했다. 이웃 달음산이나 대운산과 연계해 알음알음 찾아오는 등산객들이 늘고, 이들을 위한 임도가 산 중턱을 가로지르면서 숲이 조금씩 벗겨지게 된 것이다. 산나물과 버섯, 죽순은 씨가 말랐다. 구석구석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가 넘친다. 설상가상으로 대숲이 마르고 재선충으로 소나무도 잃게 될 처지에 이른다.

아홉산이 숲 체험장으로 거듭 난 이유는 문중의 종손인 문백섭(50·문치과의원장)씨의 아이디어다. 젊은 시절 환경단체에서 활약한 경험으로 '숲은 사유하는 것보다 공유하는 것이 더 보존되기 쉽다'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이다. 개인 소유였던 산을 생태학습장으로 완전히 개방하는 대신 숲은 찾는 모든 이들이 숲 지킴이를 자처해야 한다는 조건을 단 것이다.

숲 체험은 한달에 1~2번 주말마다 이어진다. 철저하게 사전예약한 이들만 입산시킨다. 토요일은 보통 단체 견학생들이 많으므로 가족단위 참가자라면 일요일을 택하는 것이 좋다.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 아홉산은 들녁과 시내와 마을을 아홉개의 봉우리가 올망졸망 감싸고 앉은 형국이다. 400여년 전부터 지금까지 남평 문씨 가문의 사유지로 전해 내려온다. 그래서인지 오랜 세월을 두고 가꾸고 지킨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구비 도는 산길마다 대숲, 적송, 삼나무, 편백나무 떡갈나무 등 다양한 수종들이 군락을 이룬다.

울창한 숲은 대낮에도 하늘을 가릴 정도고 자연히 산토끼, 고라니, 꿩, 다람쥐, 멧비둘기, 족제비, 오소리 등 산짐승들의 안식처로 이어온다. 온갖 이끼류와 약용 버섯도 넘친다.

숲 체험에 참가하는 이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입구 풀밭에서 숲 해설가의 경고를 귀가 따갑도록 들어야 한다. "동물들이 놀래므로 소리를 지르지 마십시오" "함부로 꺾거나 헤집지 마십시오" "이렇게 생긴 식물은 보는 족족 뽑아 주세요." 등등.

교육을 받은 뒤 들어 선 숲길은 여름과 가을이 공존하고 있다. 온 바닥이 푹씬할 정도로 마른 잎이 쌓였건만 아직도 나무에 매달린 잎사귀에선 초록물이 묻어난다. 대숲 터널을 지나 구불구불 이어진 산길 옆으로 흰색, 보라색, 주황색 등 이름모를 산꽃들이 즐비하다. 그래도 해설자는 "가을이라 종류가 많지 않아요. 야생화를 더 많이 보려면 봄에 다시 찾아오세요"하고 아쉬워한다.

산을 오르는 동안 길옆 숲 속에선 바스락 바스락 짐승들이 도망가는 소리가 이어진다. 갑자기 한 남자 아이가 화들짝 놀란다. "배~뱀~" 이어 다른 아이들은 물론이고 따라가던 엄마들도 소리를 지르며 잠시 야단법석이다. 집게 손가락 굵기의 흙빛 뱀이 풀숲으로 부리나케 숨는다. "독사예요"라는 해설자의 말에 더 동그랗게 눈을 뜨는 엄마들.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는데 해설자가 퉁명스레 나무란다. "뱀이 얼마나 놀랐겠어요? "

산 중턱 공터에서 직접 싸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은 뒤엔 본격적으로 숲 체험 놀이가 시작된다. 솔방울로 작품도 만들고, 멀리 던지기 내기도 한다. 참나무를 어귀설귀 쌓아 놓은 곳에선 손톱만한 표고를 채집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뱀눈으로 세상보기'라는 게임을 특히 재밌어 한다. 길다란 거울을 눈 밑에 붙인 뒤 거울에 비친 풍경만으로 산길을 걷는 놀이다.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비틀대는 아이들은 저들끼리 웃느라 난리다. "힘들지? 머리 위에 눈이 달린 뱀들에겐 세상이 꼭 그렇게 보인단다."

대나무에 청진기를 갖다 댄 뒤 수액이 흐르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대나무 마디에선 거짓말처럼 졸졸거리는 시냇물 소리가 난다. "나무가 물마시는 소리다. 비 온 뒷날은 천둥소리가 들릴 때도 있어. 숲에 있는 모든 건 다 이렇게 생명이 있지."

이 날 둘러 본 숲 체험은 30여만평 아홉산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지그재그로 갈라지는 산길을 내려오니 어느 새 산 아래 문씨 고가로 이어진다. 마당 한 켠 등나무 그늘 아래에서 대나무로 연필꽂이 등을 만드는 것이 숲 체험의 마지막 내용이다.

숲 체험도 체험이지만 고가 마당 또한 예사롭지 않다. 3층 높이 계단식으로 꾸며진 정원에는 나무와 잔디, 연못, 목조각상 등 볼거리가 많다. 소담스럽게 꾸며진 야외용 탁자 위로 수백년을 됨 직한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기 시작한다.


홍영진객원기자 thinpizza@ksilbo.aykt6.com



www.ahopsan.com /227-9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