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 카지노

[경상시론]공간으로 유혹하라

2007-05-17     경상일보
 
정부는 올해 초, 재래시장과 상가 밀집지역의 활성화를 위해 1900억원을 투입하여 시설 개선과 영업기법 개선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들 개선사업 중에는 시설 현대화와 관련하여 아케이드 조성을 유도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아직 아케이드에 대한 설계지침이 미비할 뿐만 아니라, 이미 만들어 놓은 아케이드에 대한 다각적인 평가가 부재한 실정에서, 이와 같은 정부의 정책은 무분별한 아케이드의 양산을 부채질할 것 같아 염려스럽다. 이미 많은 아케이드가 조성된 울산의 경우, 이러한 정책에 힘입어 여러 곳에서 추가로 조성될 것으로 보여 더욱 그러하다.

재래시장과 상가밀집지역의 활성화를 위한 방안으로서 아케이드 설치의 긍정적인 효과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소방시설과 환경, 그리고 도시경관 등과 관련한 중요한 사항들이 가볍게 취급되거나 생략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화재시 안전문제는 크게 보강되어야 할 것이다. 소화기와 비상소화장치함, 소화전 등 기초소방시설의 강화뿐만 아니라 비용과 기술적인 문제에도 불구하고 스프링클러와 드렌처, 배연장치 등도 보강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안전 문제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아케이드 설치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가로공간은 도시의 대표적인 공공 공간이다. 도시의 일상 속에서 모든 사람에게 열려져있는, 자유와 평등이 있는 자유시민의 공간이며 삶의 일상성을 담는 그릇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로공간의 아케이드화는 가로공간의 내부화를 꾀할 뿐만 아니라 도시의 공공 공간이 상업공간화되는 현상을 초래한다. 우리 모두의 공공 공간이 특정 지역의 특정 목적을 위하여 사유화 되어, 결국 가로공간에는 상품과 사람만 있을 뿐 공공을 위한 시설물은 모두 소거되어 버린다.

울산의 경우, 지난 2005년부터 학성로와 연결된 몇몇 가로공간에 아케이드가 설치되기 시작했다. 이 지역은 울산의 원도심으로서 장소적 특성과 역사성, 그리고 문화 등이 스며있고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나름의 질서 속에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지역의 역사문화환경과 무관하게 이루어진 가로공간의 아케이드화는 고유한 원도심의 정체성이 담긴 경관을 획일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특히, '젊음의 거리'는 명품가로로서의 격조 높은 장소적 잠재력을 갖춘 곳이었지만 아케이드의 설치로 품격 없는 상업가로로 전락해버렸다.

가로의 특성은 가로에 면한 건물의 성격에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보행자를 즐겁게 하는 것은 거리의 다양한 풍경이다. 거리의 풍경을 만드는 장치로는 스트리트 퍼니처(Street Furniture)라고 하는 공공 시설물들이 있다. 예컨대 가로등, 가로수, 벤치, 음수대, 정류장, 키오스크 등의 시설은 가로를 아름답게 꾸미는 소품들이다. 그러므로 좋은 거리의 풍경을 위해서는 공공 시설물의 디자인이 아주 중요하다. 이러한 소품의 배경은 가로에 면한 건물들이다. 가로에 면한 소규모 상점들은 자신의 브랜드와 매장을 아름답게 꾸미고 그 자체로서 매력적인 오브제가 될 수 있다. 독특한 디자인의 쇼윈도, 작은 간판에도 정성을 담아 디자인하는 노력들이 모여 가로의 매력적인 디자인이 되는 것이다. 걷는 즐거움은 이런 가로를 배회하며 구경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에 있다.

현재 설치되어 있는 아케이드의 디자인은 누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장소의 역사성, 문화 등과는 무관하게 보일 뿐만 아니라 저급하게 디자인된 상부 덮개가 다양한 계층의 시민이 공유하는 중요한 가로경관을 지배한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또한 다양한 크기와 모양으로 혼란스럽게 디자인된 간판과 파사드는 최근의 소비 경향인 트레이딩 업(Trading Up: 상향구매) 현상을 반영할 수 없으며, 이에 따라 점점 싸구려 물건을 파는 '싸구려 거리'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우선 아케이드의 가로에 면한 건물의 파사드와 간판 등을 제어 할 수 있는 디자인 가이드라인이 시급하다. 그리고 해당 지역의 다양한 문화컨텐츠를 발굴하거나 새로이 만드는 한편 주변의 역사문화환경과 네트워크화 하여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디자인은 21세기의 새로운 키워드다. 매력적인 공간 디자인을 통한 장소 마케팅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

김정민 울산대 건축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