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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결핍을 팝니다

2007-06-03     경상일보
 
'결핍'을 파는 가게의 주인이고 싶다. 오랫동안 품어 온 생각이다. 물질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모자라고 부족한 것이 없어 사람들은 우울하기까지 하다. 풍족함을 넘어 잉여 된 물건들이 구석구석을 채우고 남아 폐기처분 되는 것은 또 얼마일까?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결핍이 신기하고 새로운 것이 될 수 있기에 결핍을 파는 작은 가게를 운영하고 싶다.

동네의 어귀도 좋고 시장 골목의 끝집이면 괜찮을 것 같다. 학교 앞 문방구 옆집이면 안성맞춤이고 아파트 상가라면 더욱 좋은 자리다. 이 모두가 욕심이라면 24시 편의점 귀퉁이라도 만족할 것이고 버스가 드문드문 다니는 시골 길에 작은 집 하나면 멋진 자리가 될 것이다.

지난 어린이날에도 그랬고 작년 크리스마스 때도 마찬가지였다. 매번 선물 때문에 고심을 한다. 해가 갈수록 이런 저런 기념일은 늘어나는데 마땅하게 주고 싶은 선물이 없어 오랫동안 고민을 하다가 급기야 현금을 주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선물이란 주는 사람 나름의 정성이 들어가면 된다. 하지만 받는 사람에게 별 쓸모가 없거나 갖고 싶은 것이 아닐 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 모두가 가진 게 많아 결핍을 모르는 요즈음 아이들의 불행이기도 하다.

학용품은 지천이다. 여기저기 굴러다니고 잃어버려도 예사다. 그러면서 새로운 디자인의 제품이 나오면 소용이 닿지 않아도 사는 아이들이 많다. 디지털 시대에는 웬만한 장난감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옷이며 신발도 넉넉해 별 고맙지도 않다. 독서력을 키우려는 부모들의 배려로 책은 1년 내내 살 수 있다. 고가의 자전거 한 대 쯤은 어느 집에나 있다. 그러다 보니 휴대폰이나 디지털 카메라가 선물의 0순위로 등극했다.

고가의 휴대폰이나 카메라가 아이들에게 당치않은 선물이지만 다른 것은 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MP3도 한 물 갔고 전자사전, PMP(휴대용 멀티미디어 플레이어)가 선물용품으로 인기라고 한다. 정성으로 주는 게 아니라 이쯤 되면 강요가 되고 부담스러워 유쾌하지 않다.

넘치는 것은 물질뿐만이 아니다. 선물을 주고받는 기념일이 넘쳐난다. 상술이 만들어 낸 기념일이 달마다 있고 행사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낭비를 부추기게 되고 모자람 없는 현대인들에게는 좀 더 특별한 선물이 필요하게 된다.

풍요가 일상이 된 아이들에게, 선물의 가치를 잃어버린 현대인들에게 '결핍'이란 신선하고 말랑말랑한 것을 하나씩 안겨주고 싶다. 결핍이라 이름 부르는 빈 자리를 마련해 주어 그 자리에 사랑과 정성을 채울 수 있게 된다면 이 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몇 년 전 '2% 부족할 때'라는 기능성 음료가 최고 히트상품으로 음료 시장을 석권한 적이 있다. 필요 이상으로 많은 것을 먹는 사람들에게 2% 부족한 음료수는 멋진 타이틀이었다. 사람들은 2%의 결핍을 기분 좋게 사 마시게 된 것이다. '옳거니 이거구나' 무릎을 치게 하는 상품이었다. 사랑도 2% 쯤 부족해야 순수하다는 결론에 이르기도 했다.

영양이 과해서 현대병이 범람하고 뇌의 활동도 둔해진다. 비타민 남용도 병을 부른다. 잉여 생산물은 제 값을 받지 못하고 폐기처분 된다. 과속은 생명을 위협하고 과식은 미각을 잃게 한다. 말이 넘쳐나 구석구석까지 퍼지고 둥둥 떠 다녀 소문이란 못된 것으로 둔갑을 한다.

필요이상으로 많음으로서 문제가 발생하고 넘치는 것은 화를 부른다. 결국 우리는 모자라고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허전함, 아쉬움, 섭섭함과 부족함. 이들의 자리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 노력을 하고 기쁨도 얻는다. 뒤를 돌아보는 여유도 갖게 된다.

넘치는 것을 걸러주고 모자란 부분을 약간씩 채워가는 가게의 주인이 되고 싶다. 풍족함을 넘어 과잉으로 치닫는 아이들의 물질세계에 신기하고 눈을 반짝이는 '결핍'을 넌지시 건네고 싶다. 그런 가게를 마련해 넘치지 않는 만큼의 결핍을 팔고 싶다. 간판도 필요 없고 홍보는 더욱 사양이다.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과대한 선전은 식상하다. 서서히 사람들이 찾아 와 주기를 기다리면 된다.

작은 가게 앞에 간판 대신에 붙이고 싶다. '결핍을 팝니다.'


배혜숙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