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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따라 산길따라]천년세월 품어안은 노천박물관

2007-08-15     경상일보
 
(7) 호미지맥 마석분맥 제1마석산~금오산~상서장


호젓한 산길 진한 솔내음에 옥죄인 마음 열리고
골골마다 불심깊은 유적들 불국정토 들어선 듯


삼강봉에서 분기한 호미지맥은 천마산~치술령을 지나 마석산 분기봉에서 다시 마석산~삼화령~금오산~남산성~상서장에 이르는 마석분맥이란 능선을 만들어 놓는다. 이 구간은 옛 선현들의 발자취를 따라 거닐 수 있는 호젓한 송림길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마석분맥이 지나는 남산은 신라 천년의 숨결이 살아 있는 거대한 자연박물관이다. 신라가 외세를 끌어들여 반도의 끝자락만 움켜쥔 불완전한 통일은 하였지만 신라인들이 남긴 찬란한 문화만큼은 감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마석분맥의 분기점인 마석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두동 봉계에서 외동으로 넘어가는 904번 국도를 따라 사일농장까지 간다. 사일농장 입구 무덤을 지나 송림 길을 오르다보면 마석산 정상에 올라설 수 있다. 마석산(일명 맷돌산)은 경주시 내남면 명계리와 외동읍 제내리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경주 도심의 남산을 영남알프스 심장부인 가지산 정상까지 맥을 잇게 하는 중요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북으로 고위산과 남산을 받들고, 남으로 호미지맥을 따라 치술령으로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다. 한걸음씩 발길을 옮길 때마다 물씬 풍겨져 나오는 짙은 솔향에 후각이 마비될 정도로 마석산은 산 전체가 기암과 소나무다. 비록 금오산과 고위산에 떠밀려 남산 끝자락으로 밀려나긴 했지만 마석산만이 가질 수 있는 고요와 평화로움은 앗아가지 못했다. 마석산 자락에도 남산에 버금가는 기암과 괴석들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아직 미완의 작품으로 남아있는 용문암 마애불과 삼층석탑을 바라보며 신라가 조금만 더 존속했더라면 마석산도 남산에 버금가는 불국정토가 되었으리라 생각해본다.

제1마석산을 지나 제2마석산으로 이어지는 길은 때 묻지 않은 청정함과 호젓함이 숨은 매력이다. 하늘을 뒤덮은 송림길이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묵언정진을 하다보면 봉화대에 다다른다. 봉화대에서 바라다보는 남산은 또다른 매력을 풍긴다. 마석산에서 봉화대까지의 능선길이 여인의 속살처럼 부드러움의 연속이었다면 봉화대서부터는 남성의 강인함이 느껴지는 곳이다. 천년의 흔적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봉화대능선을 따르다보면 신라인들이 이루고자했던 불국정토의 조형물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숱하게 남산 자락을 오르내렸지만 남산을 찾을 적마다 유독 눈에 띄는 것이 용장사지 삼층석탑과 삼화령에 자리한 대연화좌대다. 용장사지 삼층석탑은 남산을 기단으로 삼아 탑신을 세운 세상에서 가장 높은 탑이다. 온 국토를 불국정토로 이루고자했던 신라인들의 의지가 이 탑 하나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또한 지름 2곒의 연꽃문양 대연화좌대는 불상을 세월의 풍상에 떠나보내고 흔적으로 남아 행인들을 불국정토의 세계로 이끌고 있다.

산자락을 강하게 감도는 불심에 이끌려 삼화령을 지나면 남산의 주봉인 금오산으로 접어든다. 남산은 옛 서라벌의 진산으로 남북 10㎞, 동서 4~5㎞의 타원형 꼴인데, 한 마리의 거북이 서라벌 깊숙이 내려앉은 형상이라 한다. 남산은 산세는 작지만 40여개의 계곡이 자리하고 있고, 그 안에 100여 곳의 절터, 80여구의 석불, 60여기의 석탑이 산재해 있는 거대한 노천박물관이다. 남산을 오르지 않고 경주를 보았다고 할 수 없다. 용장골의 깊은 계곡과 고위산 자락의 암릉은 설악의 축소판이다. 금오산자락이 불에 거슬리는 아픔을 겪지 않았다면 주변의 계곡과 암릉군이 한층 빛을 발할 수 있었을 터인데 아쉬움이 앞선다.

금오산을 중심으로 자리한 삼릉의 냉골과 용장골은 수많은 문화유적과 명승지가 자리하고 있다. 냉골 상선암은 영험하기로 소문이 나 전국에서 신도들의 발길이 끓이지 않고 있다. 금오산을 지나서는 임도길이 지루하게 이어진다. 끝없이 이어지는 사색의 향연을 따르다보면 경주시가지가 시원스레 내려다보이는 금오정에 다다른다. 사방이 탁 트인 전망대를 중심으로 상사바위와 일천바위, 황금대능선, 봉화대능선의 암릉군이 한껏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전망대를 내려와 남산 북쪽 끝자락, 최치원이 임금께 글을 올렸다는 상서장으로 가는 길에 경주 도성 방어를 위해 축성한 남산성이 자리하고 있다. 남산성은 신라 진평왕때 쌓았다고 전해지는데 지금은 대부분 무너지고 그 흔적만이 간신히 남아있다.

남산은 낮지만 오르면 오를수록 천년의 세월만큼이나 높은 산이다. 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접하지 않고 남산을 종주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인 듯하다. 천년전 신라인들이 구현하고자했던 불국정토의 산물인 금세기 최고의 걸작품 석굴암과 불국사, 높이 67m의 황룡사 9층 목탑은 현대의 건축술로도 재현이 불가능한 위대한 업적이다. 하산 길 내내 남산 자락 곳곳에 세운 불교문화의 진수를 온몸으로 체험하며, 천년전 신라가 이 땅에 세우고자했던 불국정토가 무엇인지 자꾸만 머리속을 어지럽혔다.

이병진 대한백리산악회 산행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