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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항아(嫦娥)의 꿈

2007-11-15     경상일보
 
중국의 인공위성 발사센터가 있는 주천(酒泉)에서 서쪽으로 600km쯤 가면 실크로드로 유명한 돈황(敦惶)이라는 곳이 있다. 돈황에는 항아의 전설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 천상의 여신인 항아는 후예의 아내였으나 천계에서 추방되어 후예와 함께 인간이 되어 지상으로 내려왔다. 어느날 후예는 서왕모(西王母)라는 여신에게서 불로장생의 약을 얻어와 아내 항아에게 맡겼는데 항아는 몰래 그 약을 먹어 버렸다.

그러자 그녀의 몸은 둥둥 공중에 뜨기 시작하더니 차츰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천계에서 추방당한 처지라 우선 월궁(月宮)에 들어가 잠시 몸을 숨기기로 했다. 월궁에 도착하자마자 그녀의 몸은 배와 허리가 옆으로 퍼지더니 입은 크게 찢어지고 눈은 흉하게 불거져 나왔다. 살결은 검어지고 또 얽어서 곰보가 된 그녀는 흉칙한 두꺼비가 되고 말았다. 맑게 갠 밤, 달에 비치는 그림자는 다름 아닌 이 두꺼비 그림자라고 한다.

이런 항아의 전설에 비하면 (역시 중국에서 유래하기는 했지만) 호랑이를 피해 동아줄을 붙잡고 하늘로 올라간 오누이가 해님, 달님이 되었다거나 달에 토끼가 방아를 찧는 그림자가 보인다는 전설을 믿는 우리 민족의 꿈은 소박하기 그지없다. 어쨌든 이 항아의 이름을 딴 중국의 달 탐사선 창어(嫦娥)1호가 지난달 성공적으로 발사되었고 이달 5일에는 달궤도 진입에 성공했다고 한다.

이미 경제대국, 군사대국이 된 중국의 군사전략이 우주에까지 미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세계의 중심을 넘어서, 하늘로 우주로 높이 솟구치고 싶은 중국인의 욕망은 항아의 전설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중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푸동의 진마오빌딩인데 건설 당시 세계 3위였다. 이 건물의 바로 뒤에는 104층과 107층짜리 빌딩이 건설되고 있는데, 중국은 2010년 상하이엑스포 개막 때 세계 1, 2위 건물을 동시에 보유한다는 야심찬 꿈을 가지고 있다.

1997년 홍콩반환 이후 2005년 유인우주선 발사성공, 올해 창어1호 발사성공, 2008년 베이징올림픽, 2010년 상하이엑스포를 통해 중국은 중화 민족주의를 자국민에게 고취시키려는 것 같다. 중국(中國)이라는 말 자체가 '세계의 중심국가'라는 뜻으로 이웃나라를 오랑캐로 간주하는 태도를 깔고 있다. 바야흐로 중화 민족주의가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가 무너져 가는 사회주의 대신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내세우고, 불안한 통치역량을 극복하기 위해 이를 활용한다고 우려한다.

<중국 신패권>의 저자 스티븐 모셔는 "중국인은 과거 우월한 중화문명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면서 "헤게모니의 야심과 강렬한 민족주의를 발휘하여 팍스 아메리카나(미국 주도의 세계평화) 이후 차기 세계 패권을 노리고 있다"고 했다. 바야흐로 팍스 시니카(중국 주도의 세계평화)의 분위기가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에 고무된 민간에서 자국 우월주의가 뒤틀린 채 표출되는 것을 우리는 자주 보아왔다. 축구경기에서 자국 팀이 졌다고 한국응원단을 폭행한다든지, 합법적인 계약을 통해 백두산에 지은 한국인 소유의 호텔을 경찰력을 동원해 강제 철거한다든지 하는 일들 말이다.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이미 경제, 외교강국이 되어버린 중국에 경외심을 느끼면서 또 한편 유례없는 후진성에 적개심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중국이 팍스 시니카가 아니라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 공동체의 공통된 가치라는 꿈을 지향하면서 그 역량에 걸맞는 리더로 변신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 중화민족 오천년의 꿈을 간직하고 발사된 창어1호가 전설 속의 항아처럼 달에서 영원히 살지언정 지상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흉측한 두꺼비가 되어버리는 것과 다른 모습 말이다. 내년 베이징올림픽의 슬로건은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One World, One Dream)'이라고 한다. 이런 멋진 구호에 걸맞는 성숙된 시민사회가 지금 중국에 절실하지 않을까? 진정한 초강대국이 되려면 경제적, 군사적 역량뿐만 아니라 이웃나라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문화라는 내면적 역량이 요구되는 것처럼.


김명석 위덕대학교 중국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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